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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왜 죽으셨나? 김정호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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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는 죽으셨나?(Why did Christ die?)

 

서론: 중세 초기에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사람이며 하나님이셔야 했는지에 대하여 신약 성경을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신약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설명하며 다양한 은유를 사용합니다. 속죄는 여러 가닥으로 짜여진 태피스트리(양탄자) 같으며, 아래에서 이러한 가닥을 살펴볼 것입니다.

 

I.        속죄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the atonement): 신약은 여러 문맥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속의 행위로 언급합니다. 구속은 일종의 구매와 관련이 있습니다. 구속은 상거래 용어로 어떤 사람이 다른 이로부터 무엇인가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를 지불하고 백성을 것이 구속입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마지막 순간에 이루었다라고 외치셨습니다. 또한 상업 용어입니다. 이것은 누군가 마지막 할부금을 지불할 송장에 전액 결제 완료라고 찍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속죄 이론과 관련하여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그리스도가 사탄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손아귀에서 백성을 구하여 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괴범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유괴된 자를 구해내는 것처럼 그리스도도 세상 임금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그에게 잡혀 있던 인질들을 구해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의 단점은 사탄에게 그가 가진 권세 이상의 권세를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는 그리스도가 백성들이 성부에게 죄의 빚을 갚으므로 그들을 구해냈다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구약에는 결혼할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결혼 지참금을 지불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하여 몸과 , 그의 생명을 지불하였다는 견해입니다.

 

다른 견해는 루터 교회 신학자들이 제창한 승리자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선과 악의 대결을 펼치셨고 악의 세력을 꺾으시고 승리하셔서 사로잡혀 있던 자들을 자유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3:15 말씀,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것이라는 말씀을 성취하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고통과 상처를 입으셨지만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속죄에 대한 다른 견해는 통치 이론입니다(the governmental theory). 이론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실제로 지불하신 것이 아닙니다. 견해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에 대한 형벌을 대신하는 의미 있는 일로 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용서를 베푸시면서도 죄에 대한 진노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유지하실 있다는 것입니다.

 

II.       만족설(The satisfaction theory): 만족설은 속죄의 필요성,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 화목하는데 피의 제사를 요구하시는 그런 하나님을 믿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요구하는가? 그렇게 보복적이신 분은 어떤 하나님이란 말인가?” 라고 성토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진리를 받아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공평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일방적으로 용서하시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혜, 긍휼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란 생각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공의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의로움 뿐만 아니라 선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항상 옳게 행하십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그의 판단과 평가는 완전합니다. 그렇기에 그의 심판은 틀릴 없으며 완전하게 옳습니다. 이렇게 의로우신 하나님은 또한 선하십니다. 악을 벌하지 않는 재판장은 의롭지 않기에 선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십자가의 비밀을 논할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의롭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3:26).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도덕적인 빚을 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에게 의무의 짐을 지웁니다. 우리는 의무가 요구하는 , 완전함이란 명령을 이행해야 합니다. 한번이라도 죄를 짓는다면 갚을 없는 죄의 빚을 채무자가 됩니다.

 

금전적 빚과 도덕적 빚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전적 부채는 거래에서 빚진 금액이 있는 부채를 말합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는 어린 소년을 상상해 보세요. 소년이 아이스크림 콘을 주문하자 종업원이 콘을 주면서 소년에게 2달러를 빚졌다고 말합니다. 소년은 주머니에 손을 뻗어 1달러 지폐만 꺼내면서 얼굴이 굳어집니다. "엄마가 1달러만 주셨어요."라고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주머니에 손을 뻗어 1달러 지폐를 꺼내 웨이트리스에게 건네며 "여기, 나머지 절반은 내가 낼게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소년은 여러분을 쳐다보며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길을 가겠죠. 하지만 웨이트리스가 계산을 받아야 하나요? 대답은 ''입니다. 이미 금전적으로 빚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소년을 대신하여 카운터에 돈을 올려놓는 , 그것은 합법적인 지폐이므로 웨이트리스가 계산을 받아야 합니다.

이야기를 조금만 바꾸면 결과는 달라질 있습니다. 어린 소년이 다시 가게에 들어왔지만 콘을 주문하는 대신 점원이 가게 뒤쪽으로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운터 뒤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떠서 콘에 담고 가게를 빠져나가려고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매장 주인이 그를 잡아 경찰에 신고한 모습을 지켜 후에. 소년이 안쓰러워서 경찰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잠깐만요, 경찰관님. 일은 잊어버리자고요. 아이스크림 값은 제가 낼게요."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가게 주인에게 2달러를 건네줍니다. 경찰관이 주인을 바라보며 "고소하시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경찰관은 가게 주인이 아이스크림 콘에 대한 귀하의 지불을 수락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경우 거래 이상의 것이 관련되어 있음을 이해합니다. 법을 어겼으니 도덕적 채무가 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상점 주인은 귀하의 결제를 수락하거나 거부할 있습니다.

 

번째 예화에 비추어 속죄를 살펴볼 있습니다. 대가를 대리인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방관자의 생각이 아니라 주인의 생각이었습니다. 우리의 도덕적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분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내가 빚을 갚을 없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너의 대가를 받겠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를 협상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의를 희생하거나 그분의 정직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본질적으로 "나는 죄가 반드시 벌을 받도록 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공의입니다. 십자가의 자비는 하나님께서 대속물을 통해 대가를 받으셨다는 점에서 있습니다. 바울의 말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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