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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lt of the earth | 김정호 | 2021-04-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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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예배 말씀 공부와 나눔-140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3)
주제: 참된 제자는 세상을 위하여 맛을 내는 소금이기에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세상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서론: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맛에 비유합니다. “허, 그 사람 싱겁기는”, “저 사람은 독해요”, “작은 고추가 매워요”, “정말 짠 구두쇠네”, “그는 정말 달콤 해요.” 맛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을 묘사하는 표현들입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표현을 마태복음 5:13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을 소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칭찬입니다. 고대인들은 소금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소금에 빗대어 누군가를 표현하는 것은 칭찬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제자들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에서 맛을 내는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가 없다는 경고도 하십니다. 세상에서 신자들은 소금과 같은 존재이기에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상한 맛을 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와 교인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독한 맛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상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돈 맛, 명예 맛, 권력 맛, 인기 맛을 추구하는 자들은 소금 맛을 상실합니다. 소금의 본래의 맛을 내지 못해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된 교회의 모습이 혹 우리에게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세상의 소금”이란 은유적 표현에서 몇 가지 교훈의 말씀을 배우고자 합니다.
1. 배울 내용 a) 참된 제자는 세상을 위하여 필요한 존재입니다-소금이 생활에 필수적인 것처럼 제자들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옳게 행하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비난과 조롱과 핍박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들입니다. 소금은 우리의 건강과 식생활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땅의 소금”이라고 부르십니다. 한국어 성경은 “이 땅”을 세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땅”이라는 말은 우리가 발은 딛고 서 있는 삶의 현장, 현실을 뜻합니다. 세상은 매우 포괄적인 표현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은 “이 땅”입니다. 우리의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삶의 현장, 곧 가정, 학교, 직장, 사업터 등에서 사람들에게 우리는 소금과 같이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때론 우리가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로 부르시고 세상으로 우리를 파송 하십니다. 그런데 교회는 역사적으로 세상과의 관계에서 두 가지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는 수도원 운동과 같이 세상과의 고립을 선택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무분별한 전도 방법으로 세상과의 동화를 선택하였습니다. 세상을 떠나 자신들만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려 했던 수도원 운동은 “세상의 소금”라는 직책을 외면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세상을 얻고자 세상과 하나가 된 것은 세상의 소금이라는 역할을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있으면서도 세상의 인본주의 이념, 가치관, 철학을 따르지 않는, 즉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로 지혜롭게 살도록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b) 참된 제자는 세상을 위하여 유용한 존재입니다-소금이 필수적이라는 말은 유용하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소금이 어떤 면에서 유용한지를 살펴보면 세상에서 우리들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소금은 방부제, 비료, 소독제, 양념 등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크게 두가지 면에서 소금은 유용합니다. 첫째는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입니다. 소금으로 저민 고기는 썩지 않고 오래 간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의 온갖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살인, 사기, 폭력, 횡령, 분열, 가정 파괴, 성범죄 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소금처럼 그것들을 저지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쾌락, 마약, 매춘, 도박 등으로 가정이 깨지고 젊은이들이 미래를 송두리채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중독성이 강한 죄악들이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썩은 냄새가 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맞고 그리스도께 이끌리게 해야 합니다. 둘째는 맛을 잃고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참 맛을 내주어야 합니다. 맛은 삶의 기쁨, 행복, 목적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인생에서 맛을 찾아 부지런히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온갖 것을 시도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참 맛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야 삶의 목적, 기쁨, 행복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참 맛을 본 자들입니다. 별 맛 없는 죽에 소금을 조금만 넣어도 맛난 죽으로 변하듯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서 녹아져 맛을 내야 합니다. 누군가 생의 참된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는데 우리의 맛이 사용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c) 참된 제자의 진정한 맛은 그들의 인격입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소금의 참된 맛은 예수님을 닮은 인격입니다. 이미 팔복을 통하여 제자들이 어떤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마음의 인격, 죄를 애통해 하는 인격 , 온유한 인격, 의를 갈망하는 인격, 긍휼이 여기는 인격, 청결한 인격, 화평케 하는 인격, 의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기쁨으로 인내하는 인격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인들을 사랑하신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이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에 자신을 내어 주셔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주신 사랑은 최선의 인격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인격입니다. 자기 사랑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자기 희생은 짊어지기 어려운 짐입니다. 세상은 이기주의를 부추키면서도 이기주의자를 환호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 생명을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을 높이 인정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은 세상이 추구하는 돈, 명예, 쾌락, 권력을 동일하게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의와 불의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구별된 삶은 바리새적인 우월감에 근거한 구별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희생적인 사랑에 근거한 겸손한 구별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서 맛보고자 하는 소금의 맛은 예수님을 닮은 구별된 인격입니다. 이것의 핵심은 자기를 주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헌신적 사랑으로 자기를 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헌신적으로 자기를 주므로 사랑할 때 우리는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여된 영성은 본질이 아닙니다. 제자도의 본질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내야 하는 맛입니다. d) 맛을 상실한 제자는 세상을 위하여 무익합니다-물이 젖은 특성을 가지고 있듯 소금은 짠맛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은 특성상 짠 맛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의미로 맛을 잃어버림에 대하여 경고하신 것일까요? 순수한 소금이 불순물이 뒤섞여 버리면 소금 고유의 맛을 내지 못합니다. 더러운 찌꺼기가 소금을 뒤덮고 온갖 불순물이 뒤섞이면 소금 고유의 맛은 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찌꺼기, 불순물이 제자들의 마음에 들어와 인격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그 맛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맛을 잃는 것”을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으로 보십니다. 13절 본문에서 헬라어 “모라이노”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동사에서 영어 “moron (멍청이)”이란 단어가 파생되었습니다. 우리가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면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경고입니다.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세상에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됩니다. 신앙인들이 세상과 동일한 삶을 살면 이미 그 맛을 상실한 소금과 같습니다. 세상은 이러한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러한 자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소금 맛을 상실한 자의 삶을 가장 비참하고 무가치한 인생으로 말씀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삶을 살고자 원치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멍청하게도 무가치한 인생을 삽니다. 세상의 온갖 죄악의 맛을 탐닉하며 참된 인생의 맛을 상실하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자기 인생이 무가치하고 쓸모 없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이것을 잊으려고 더욱 더 센 중독적인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죄책감만 더할 뿐 마음의 공허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맛 보기 전에는 참된 인생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진정 모든 사람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삶이 자동적으로 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인격을 닮아 소금의 맛을 내야 합니다. 소금이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세상 가운데서 신앙인들은 정말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러한 존재로 부르십니다. 이 진리는 큰 위로가 됩니다. 동시에 큰 도전이기도 합니다. 우리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입니다. 오직 예수님께 믿음의 눈을 고정할 때 소금의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하신 은혜로 제대로 된 소금의 맛을 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한 가지씩 나누어 보세요. 한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b)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혹 맛에 비유해서 표현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맛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그런지를 서로 나누어 보세요. 여러분은 자신을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로 여기십니까 아니면 아무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십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세상의 소금”이라는 부르신 말씀이 어떻게 위로가 되는지 나누어 보세요. c) 여러분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십니까? 분리입니까 아니면 동화입니까? 이것 저것도 아니면 성별입니까? 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토론해 보세요. 여러분은 부패한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십니까? 부패를 막는 소금의 역할입니까 아니면 부패를 촉진하는 균 역할을 하십니까? 혹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의 정직과 헌신적인 인격을 보고 자신도 본 받고 싶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행복하실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을 할 때 여러분은 진정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d)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우리의 참된 인격이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여러분의 헌신적 사랑으로 맺은 선한 열매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나누어 보세요.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누어 보세요. 그런데 소금의 맛을 상실하여 무기력하고 무가치함을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소금의 맛을 내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함께 나누어 보세요.
3. 기도할 내용 a.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목장 모임이 부흥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b.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고국의 평안과 바른 통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c. 교회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되고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d.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 교회의 영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f. 교회에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g. 성경번역 박혜리 선교사님, 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이 영상선교사님(신혜 아버지)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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