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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secuted for Christ 김정호 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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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예배 말씀 공부와 나눔-139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 5:1-12)

 

주제: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들은 천국에서 영광의 훈장을 받습니다.

                                                                                      

서론: 전쟁터에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국가는 이들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하여 명예 훈장을 줍니다. 올림픽에서는 고된 훈련을 통과한 경기에서 일등 자들이 면류관, 혹은 금메달을 받습니다. 이들은 국가를 대표하여 싸워 메달을 따고 국민의 환영을 받으며 귀환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전쟁, 스포츠 영웅들을 존경하며 찬사를 보냅니다. 영원치 않은 면류관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감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은 썩지 않을 면류관을 위하여 일하며 싸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는 자들입니다. 옳은 일을 행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때문에 세상의 조롱, 핍박,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목숨을 다해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을 지킵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여덟 번째 복에서 의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이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팔복에서 말하는 신자는 여덟 종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종류, 그리스도를 받는 신자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가 행복합니다. 행복을 목적으로 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며 행복한 자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기쁨으로 감내합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광의 훈장을 받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점을 살펴 보려 합니다.                    

                 

1.  배울 내용

첫째, 핍박은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연적입니다. 세상은 신자의 편이 아닙니다. 신자를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세상 신의 조정을 당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합니다. 세상의 세계관과 신자의 세계관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삶과 신자의 삶도 다릅니다. 그들과 하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신자들은 핍박을 당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의 가치관을 따르기 때문에 세상은 믿는 자들을 핍박합니다. 신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며 세상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면 세상의 인정과 칭찬 대신 미움과 핍박을 받을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처럼 제자들을 미워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경건한 삶을 살려고 하면 핍박을 받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신자들은 세상과 동질화 없습니다. 세상과 분리될 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 신자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다는 것은 다른 가치 체계가 충돌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팔복에서 말씀하시는 덕목은 세상의 것과 충돌합니다. 영적 가난함은 인간의 교만과 충돌합니다. 죄에 대한 애통함은 마음대로 살라는 세상의 외침과 충돌합니다. 세상은 온유함의 덕목을 루저의 연약함으로 치부하며 자기 주장을 피력합니다. 세상은 의에 대한 갈망 대신에 , 인기, 성공을 갈망합니다. 긍휼함은 세상의 이기심, 완고함과 충돌합니다. 마음의 청결함은 위선이나 타협과 충돌합니다. 세상은 논쟁을 삼으며 이기려 하지 화평을 원치 않습니다. 참된 기독교는 세상과 짝이 없습니다. 외식과 불경건을 죄라고 말할 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귀하게 여기신 덕목을 조롱합니다. 현대 사회는 기독교의 세계관, 가치관을 수용할 없으며 충돌할 밖에 없습니다. 스타트의 말처럼 핍박은 화합할 없는 다른 가치관의 충돌일 뿐입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크리스천이 어떤 형태의 핍박이든 그것을 피할 있는 유일한 길은 세상과 화합하여 세상이 하나님을 모욕할 때도 어떤 반대도 하지 않으며 죄를 웃어 넘기고 자기 탐닉을 자랑 삼으며 물질주의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하므로 크리스천이라 불릴 권리를 상실합니다.

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살면 반드시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핍박 받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야외에서 복음을 전하며 종종 적대적인 군중들을 대면했습니다. 그는 런던에 있는 무어필즈에서 야외 집회를 인도할 있었던 일을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 오물, 썩은 계란, 죽은 고양이 세례를 군중에게 받았습니다.” 군중들은 그가 그들의 죄를 말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것을 견딜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복음을 전하며 핍박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했던 것입니다.           

둘째, 핍박은 진정한 크리스천 됨의 확실한 표식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면 세상과 다른 것이 드러납니다. 세상은 자기와 다른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핍박이 그가 참된 신자라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핍박 받을 다른 무엇보다도 구원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파이퍼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통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과 선교를 한다는 것의 중심에 있다.” 주님은 핍박이 없는 것이 복이라고 말하기 보단 핍박 받는 것이 복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핍박은 세상의 타락한 체계와 우리가 얼마나 구별되게 살아 가고 있는가를 말해 줍니다. 사실 예수님도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귀신 들린 , 주정뱅이, 죄인의 동무, 신성 모독자 등으로 비방을 받았습니다. 얼굴에 뱉음을 당하고 그의 등은 채찍질로 살점이 날아가고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그의 두손과 발에는 대못이 박혔습니다. 벌거 벋은 채로 십자가에 달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믿어 줄게라는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는 죄인들을 위하여 이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받아야 고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신약의 사도들 모두 주님처럼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죄를 폭로하고 회개를 촉구할 이들은 돌에 맞고 옥에 갇히고 톱으로 켜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주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15:18-20).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영웅들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11:36-38).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 받을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선지자들, 사도들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가 그의 제자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어떤 이적을 행하는 것이 신자 됨의 표식이 아닙니다. 참된 신자의 표식은 그리스도와 의를 위하여 고통을 받아도 인내하는 것입니다. 15세기 위대한 개혁자 하나였던 이탈리아인 사바나롤라가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처럼 백성들의 죄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며 종교 개혁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천둥같은 목소리로 말씀을 전하며 죄를 비판할 그를 듣는 자들은 두려워하고 당황하며 말을 잃었습니다. 그의 회중은 종종 교회 건물이 울릴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설교를 견딜 없었습니다. 회개하는 대신 그를 화형 시켰습니다. 세상은 이러한 자를 감당치 못합니다. 세상은 악을 지속하려고 그러한 자를 제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성경의 선지자들의 발자취를 따른 설교자입니다. 사람들은 선지자를 미래를 점치는 자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로 미래를 보기도 했지만 그의 주된 사역은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개혁자였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님이 그와 그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가 복되다 했을 청자들은 이해할 없고 놀랐습니다. 이미 그들은 로마의 핍박을 겪어 왔습니다. 로마의 핍박을 벗어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핍박 받는 자가 복되는 말에 동의할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고통, 핍박이 없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죄가 아닌 바른 이유에서 핍박 받는 신자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셋째, 핍박은 천국의 기쁨으로 대면해야 합니다. 핍박이 오면 당황하고 분노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고통이라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복을 받아야지 화를 당하면 누가 믿겠는가라고 회의적일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예수 믿는 때문에 욕먹고 비난 받으며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는 자들이 있음을 증거합니다. 로마 황제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황제가 아닌 다른 왕을 섬기는 것으로 인하여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순교를 선택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피하려고만 할까요? 핍박을 자초하거나 핍박을 회피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핍박 자체가 복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 그것을 복으로 여기고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핍박을 대응하는 내적인 태도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말씀하실 이는 기뻐 춤추는 진정한 기쁨을 뜻합니다. 핍박 받을 억지로 기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인 기쁨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이것은 근거가 없는 기쁨이 아닙니다. 기쁨은 천국을 소망함에서 옵니다.

핍박을 받을 불평하고 저주하며 슬퍼하면 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쁨으로 핍박을 대면하면 영혼이 소생하고 믿음이 강화되며 소망이 넘쳐납니다. 죽어가는 자리에서도 천국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웃을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의 보좌와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며 기뻐하였습니다. 돌을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핍박에 대한 진정한 승리입니다. 뺨을 치는 자에게 오른 뺨까지 돌려 내는 여유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할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외심은 영혼에 천국의 소망을 주고 기쁨을 솟아나게 합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하며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라고 위협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하나님을 순종하며 핍박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기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41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들은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기쁨은 핍박의 쏘는 힘을 무력화합니다. 복수심을 와해시키고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핍박을 대응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말하였습니다( 8:10).

루마니아 공산 치하에서 목회하던 요셉 쩐이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그의 모든 책들을 압수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책들이 모두 그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서명을 하게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가 서명을 하려 책의 제목과 부제목을 보고 그는 성령의 충만을 경험합니다. 제목은 형용할 없고 영광스러운 기쁨입니다. 부제목은 당신이 현재 이러한 기쁨을 경험하고 있습니까?”입니다. 그는 성령에 충만하여 아내에게 군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게 합니다. 그는 기쁨 가운데 두려움과 분노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의 회중은 목사님이 모든 책을 압수 당하고 취조 당하시느라 주일 말씀을 준비할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은 주간의 경험을 중심으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기쁨이니라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말씀은 고난 중에 있었던 교인을 압도하며 은혜를 주었고 삶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핍박, 고통은 천국을 기대하며 기쁨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A. W. 핑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숨을 쉬는 것으로도 땅의 모든 역풍을 소멸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누리는 기쁨이 핍박을 이기게 합니다. 땅만 바라보면 모든 것을 잃지만 천국을 바라보면 모든 것을 얻습니다.  

넷째, 핍박은 하나님의 상급을 얻게 합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주심에 대한 기대는 핍박을 이길 있는 기쁨과 소망을 줍니다. 믿음을 불타게 합니다. 핍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상급을 받게 합니다. 주님은 번째 복과 여덟 번째 복에서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라고 선포하십니다. 특히 의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 받는 , 바로 이러한 자들의 것이 바로 천국이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이러한 자는 번째 복부터 일곱 번째 모두를 받습니다. 이들은 천국에서 가난 대신 부요함을, 배고픔 대신 만족함, 모욕 대신 칭찬을, 핍박 대신 승리를 누리게 것입니다. 사망은 영생에 삼킨 것입니다. 주님은 10-12절에서 복이 있나니 반복하십니다. 이는 핍박 받는 자들이 갑절의 복을 받게 것을 뜻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상이 내게 있어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22-12). 하나님의 상급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색한 사람의 상급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무한한 사랑과 부요함과 후함을 가지신 하나님이 예비하실 상급이 어떨 것인지를 가히 상상할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상급을 받자고 고난을 견디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때문에 결혼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상급은 우리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완전하지 않고 죄의 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하나님은 핍박 받는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상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급을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상급을 믿지 않는 자들은 열심히 노력하지 않습니다. 게으른 학생은 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상을 기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열심을 내고 핍박을 기쁨으로 대응한다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상급을 기대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상급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핍박을 기쁨으로 감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2:2).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도 그의 고난에 참여하며 영광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은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가벼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8-10, 17-18).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들은 반드시 천국에서 영광의 훈장을 받습니다. 때를 소망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핍박을 대응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나누어 보세요.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b.     여러분은 예수님 때문에 먹고 비방을 받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경건하게 살려는 신자들에게 핍박이 있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핍박이 여러분에게 유익이 있다고 믿습니까? 세상의 가치관과 여러분의 가치관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가치관과 성품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c.      여러분이 참된 신자인 것을 어떻게 있습니까? 여러분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 천국 시민이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의와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 받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할 있습니까? 여러분이 예수님과 선지자들처럼 핍박 받을 여러분은 자신을 어떠한 자로 이해하십니까?       

d.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로 인하여 욕먹고 핍박 받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은 기독교의 부패로 인하여 비난을 받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핍박으로 인하여 번이라도 기뻐하며 즐거워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핍박 중에도 기뻐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핍박 받을 천국을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핍박으로 인하여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있다고 믿습니까? 상급을 기대할 마음이 어떠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환영하시며 칭찬해 주실 것을 생각할 마음에서 믿음과 소망이 불타오르는 것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신앙 생활에 천국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땅의 일에만 몰두하며 살고 있다면 여러분의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기도해 보세요.   

 

3. 기도할 내용

a.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이끌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목장 모임이 부흥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b.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고국의 평안과 바른 통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c.      교회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되고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d.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     교회의 영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f.      교회에 함께 일할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g.     성경번역 박혜리 선교사님, 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영상선교사님(신혜 아버지)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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