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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김정호 202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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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예배 말씀 공부와 나눔-135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 5:1-12)

 

주제: 의에 대한 갈망은 참된 만족으로 인도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사모해야 합니다.

                                                                                      

서론: 시카고 대학 교수인 칙센트 미카일은 그의 몰입의 기쁨에서 행복을 나의 관심을 완전히 사로잡는 의미 있는 일을 능숙하게 내는 이라 정의합니다. 과연 우리의 관심을 완전히 사로 잡는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돈의 가치를 제일 의미 있게 여겨 버는 일에 몰입합니다. 다른 이들은 관심있는 학문에 몰입하여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아이들은 게임에 몰입하여 공부에 대한 부담을 잊고 행복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에 몰입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그것을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우리는 신체적으로 배고픔과 갈증은 느끼고 음식을 섭취하여 건강을 유지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현상을 들어 영혼의 배고픔, 갈증을 설명하려 하십니다. 여러 음식을 먹지 못하면 음식 생각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먹고 마셔야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보단 죄로 그들의 영적 갈망을 해갈하려 합니다. 죄는 먹으면 먹을수록 전혀 만족함을 주지 않고 오히려 파괴할 뿐입니다. 반면에 의는 먹으면 먹을수록 행복을 얻고 더욱 먹고 싶어집니다. 의에 대한 갈망은 참된 만족을 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의를 갈망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내면 안에 있는 영적 사모함입니다. 오늘 영적 사모함에 대하여 살펴 보려 합니다.  

                 

1.  배울 내용

첫째, 영적 사모함은 갈망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의 법에 완전히 부합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도덕법을 마음과 행동으로 완전하게 지켜서 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에덴 동산에서 읿어 버린 원래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없는 의롭고 거룩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기쁨의 동산에서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누리며 그를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그리하여 죄에 떨어져 의로움, 거룩함, 하나님의 교제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종교와 문화를 만들어 잃어버린 의와 거룩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실 있는 것을 자기의 방법으로 채우려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상실한지 모르고 무작정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 온갖 것을 사고 마시고 소유하여 채우려 합니다. 소비사회에서 좋고 편리한 물건들을 파괴적인 세일 가격에 장만하여 행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모든 물건도 그의 영적 갈망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중국의 십대 청소년은 부모 몰래 자신의 신장을 팔아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물질로 영혼의 공간을 채워 행복하려는 물질주의의 전형입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마릴린 먼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 인기, 재산을 소유하고도 설명할 없는 공허함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녀는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닫는 해수욕장과 같다 말을 남기고 자살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백성이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2:13).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열심히 파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행복하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믿음으로 받는 자가 행복합니다. 자신의 영적 파산을 깨닫고 죄를 애통해 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완전한 , 예수님이 완전한 삶과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완전한 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용서와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받는 이신칭의입니다.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완전한 의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종교나 선한 행위를 의지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율법의 완전한 요구를 만족시킬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의롭다 함을 받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들만이 의롭다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 죄에 관련하여 예수님의 완전한 의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롭다 여김을 받았기 때문에 매일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사모하며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의롭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성화입니다. 칭의와 성화는 서로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바른 말씀을 따라 행하며 의로운 자로 살아야 합니다. 의를 갈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삶의 모든 영역에 이루어지길 힘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악된 세상에서는 완전한 성화를 이룰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죄의 냄새가 나고 죄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탄식합니다( 7:24). 예수님이 준비하신 나라에 들어갈 날을 고대하며 완전한 성화, 영화를 갈망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영화로운 몸을 입을 때를 사모하며 매일을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힘씁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으려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의 인격자가 누리는 행복입니다. 죄로 더불어 사는 자는 결코 참된 행복을 누릴 없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갈망하며 사는 자들은 행복합니다. 이들은 용서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의로움의 평강이 어떤 것인지를 압니다. 다시는 주리거나 마르지 않을 영원한 나라의 행복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복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영적 사모함은 신자 됨의 참된 표식입니다. 갓난 아기의 건강은 그의 식욕을 보면 있습니다. 시체는 식욕이 없습니다. 음식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은 배고픔과 갈증을 느낍니다. 이것은 그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그의 , 하나님과의 교제함, 기도, 예배, 교회에 대한 사모함을 느끼는 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사모한다는 증거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살아 있고 건강합니다. 반면에 영적으로 죽어 있거나 병든 자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죄에 깊숙이 빠져 공허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갈망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건강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책을 가장 사랑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타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합니다. 하나님 보다 갈망하는 것이 없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영혼이 하나님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42:1-2). 다윗도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갈망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63:1).

예수님이 말씀하신 배고픔과 갈증은 음식이 없어 죽어가는 자의 굶주림과 갈망입니다. 한두 끼니를 굶은 상태가 아니라 아사 상태의 굶주림입니다. 목이 조금 마른 정도가 아니라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입니다. 팔레스타인에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목이 마르고 모래 바람이 불어 코와 목에 모래가 가득 채워질 느끼는 죽을 정도의 갈증입니다. 생각밖에 나지 않는 상태, 바로 이렇게 하나님과 그의 의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입니다. 누가 말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갈망하기에 죽기 살기로 찾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렬한 배고픔과 갈증이며 계속해서 증가하는 갈증입니다. 의를 조금만 먹고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먹고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윌리엄 바클레이 주석가는 마태복음 5:6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음식을 사모하여 굶주려 죽어가는 자들처럼, 물을 사모하여 갈증으로 멸망하는 자들처럼 그렇게 의를 통째로 사모하는 자들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만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의를 통째로 갈망해야 합니다. 19세기 프리머스 형제단 운동을 이끈 J. N. 다비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절박함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배고픔으로 충분치 않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려고 굶주려 죽어갈 정도가 되어야만 한다. 탕자가 배고팠을 때는 찌꺼기로 연명했다. 그러나 그가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에게 돌아왔다.” 하나님만이 채우실 있는 절박함이 바로 이런 것이다.” 영적 식욕이 없다는 것은 영혼에 걸린 질병의 증상입니다. 식욕이 없는지를 원인을 찾아서 치료해야 합니다. 근복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우리는 증상만 다루지 말고 원인인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식욕이 회복되고 건강이 회복됩니다. 영혼이 다른 것을 갈망하는 이유도 죄입니다. 영혼의 갈증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가 죄를 애통하였으면 우리 영혼은 죄가 아닌 의를 갈망합니다. 우리 영혼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공허한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솔직하게 살펴 보아야 합니다. 겸손히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갈망해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셋째, 영적 사모함은 하나님만이 채워 주십니다. 영적 갈망은 신제품이 채워줄 없습니다. 신흥 종교가 채워줄 없습니다. 유능한 정치인이나 인기 있는 연예인이 채워줄 없습니다. 물질, 지식, 명예가 채워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채워주실 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 순수함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헬라어 동사 코르타조 사용하십니다. 동사는 가축이 구유에 있는 먹이를 이상 먹을 없을 때까지 만족스럽게 먹을 쓰입니다. 마치 양이 푸른 꼴로 배불리 먹고 만족하고 기뻐하며 안식하는 모습을 연상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동사는 미래 수동태입니다. 주어는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채우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와 미래에 계속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먹어서 배부르다고 다시 먹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배고파지면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의로 배부르면 맛을 알기에 먹고 싶습니다. 만족하다고 이상 원치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원하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채워 주십니다. 이렇게 채움을 경험했던 다윗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23:1-2). 그런데 우리들은 여전히 세상적인 방법이나 세상적인 것들로 영혼의 공허함을 채우려 합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채움을 받지 못하고 더욱 공허함을 느낍니다. 영혼의 공간을 채우려는 노력은 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기에 공허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먹되 없이,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55:1-2). 예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5). 예수님이 우리를 초대해 주시고 변변치 않는 음식으로 우리를 대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길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면 행복할 것이란 거짓말로 유혹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을 진실로 믿고 살아가며 여전히 불행합니다. 오늘날 벨기에를 통치하였던 14세기 군주 래이날드는 매우 뚱뚱하고 육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동생 에드워든 반역을 일으켜 그의 왕좌를 빼앗았습니다. 에드워드는 형을 죽이지 않고 성에 방을 하나 만들어 그곳에 살게 하였습니다. 방을 나오면 다시금 왕좌와 재산을 회복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방은 창문도 여러 있고 문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래이날드가 너무 뚱뚱해서 문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동생은 형이 좋아하는 음식을 푸짐하게 매일 넣어 주었습니다. 형은 마음껏 먹고 지냈습니다. 방에서 벗어나려면 음식을 절제하고 살을 빼서 나올 있었지만 형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에드워드가 잔인하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에드워드는형은 죄수가 아닙니다. 원하면 언제든지 방을 떠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그는 전쟁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래이날드는 후에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형은 식탐의 노예였고 동생은 권력의 노예였습니다. 사탄은 이렇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패망의 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그릇된 것을 원하는 것이 죄입니다. 의를 갈망하는 것이 ”, 올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원하는 의를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갈망하는 자들을 거룩하게 살도록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바른 관계를 유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영혼의 사모함을 만족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영적 갈망은 하늘 나라에서 완전하게 만족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 이러라”( 7:16-17). 비록 죄로 인하여 고난이 많은 세상을 살지만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갈망해야 합니다. 다음은 우리의 고백이며 확신입니다: “하늘에서는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밖에 나의 사모할 없나이다.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73:25-26).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행복한 영혼의 상태입니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나누어 보세요.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b.     여러분은 무엇에 몰입할 행복감을 느끼십니까?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가는 영적 갈증이 어떤 것입니까? “ 무엇을 뜻하며 에덴에서 잃었던 찾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여러분 노력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c.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어느 정도 갈망하십니까? 얼마큼의 의를 갈망하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없어서 괴로워하신 적이 있습니까? 매일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갈증을 어떻게 해갈하십니까? 지금까지 죽을 만큼이나 죄와 싸우며 의를 행하고자 적이 있습니까? 죄에 대한 욕망과 의에 대한 갈망은 어떻게 다르며 각기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세요.

d.     여러분이 말씀, 기도, 예수님, 순종을 사모했을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해 주셨는지 나누어 보세요. 영혼의 굶주림, 목마름으로 인해 죽을 지경이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절박하게 찾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갈망을 어떻게 채워 주셨는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3. 기도할 내용

a.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이끌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목장 모임이 부흥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b.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고국의 평안과 바른 통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c.      교회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되고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d.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     교회의 영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f.      교회에 함께 일할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g.     성경번역 박혜리 선교사님, 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영상선교사님(신혜 아버지)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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