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Jesus our King | 김정호 | 2021-01-06 | |||
|
|||||
|
목장 예배 말씀 공부와 나눔-128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1-7) 주제: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
서론: 저마다 누군가의 다스림 아래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자기 인생의 지배자, 곧 왕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오늘날은 개인의 자유를 숭배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지배자가 있고 피지배자가 있습니다. 이 관계는 힘에 의한 억압과 탄압의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독재자들은 국민들이 자기들의 권력과 만족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국민들을 희생하여 자기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려 합니다. 자기들의 권력에 위협적인 존재는 가차없이 처형하여 그 권세를 영원히 누리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자기 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없기를 소원한다 해도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 소유권과 주권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의존하며 살 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자기의 왕국을 건설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좋지 못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피로 얼룩진 이유는 왕국,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조물주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을 받고 멸망하였습니다. 남왕국의 아하스 왕은 왕권과 주권을 지키려 애굽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앗수르의 공격을 저지해 보려 합니다. 만군의 왕되신 여호와를 의지할 것인지 아니면 애굽 왕 바로를 의지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여호와를 의지할 것을 권고합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중간에서 오락가락하며 결국에는 애굽 왕을 의지합니다. 북왕국의 멸망한 백성들과 남왕국의 위협을 받고 있는 백성들은 사망의 그늘 아래 살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들에게 앞으로 오실 메시아-왕이 있는데 이분을 의지하라고 권고합니다. 6-7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실 메시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으로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시고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분을 여러 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여러 호칭은 그분의 신분과 여러 사역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그의 네 가지 호칭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1. 배울 내용 첫째, 예수님은 놀라우신 지혜자입니다. 한글 성경이 “기묘자라, 모사라”로 번역한 두 단어는 사실은 한 칭호를 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Wonderful” “Counselor”입니다. 첫 단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경이롭고 초자연적인 일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출애굽의 역사와 같은 경우입니다. 불 기둥과 구름 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요단 강을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 등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상식과 일상을 뛰어넘는 기적적인 사건들은 메시아의 신성을 보여주며 경이로움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수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의 출생, 삶, 기적, 죽음, 부활, 승천 등은 그의 신성을 보여줍니다. 두번째 단어는 마음과 삶을 바꿀 수 있는 지혜로운 조언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말씀이요 삶을 송두리채 바꿀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두 단어는 각각 다른 칭호 라기 보단 한 칭호, 곧 “놀라우신 지혜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과 지혜를 소유하신 분입니다. 이사야 당시 백성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운데 미래가 막막한 가운데 절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보여준 메시아, 하나님께서 주실 “한 아기”는 다름 아닌 놀랍고 경이로운 지혜자입니다. 그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며 삶을 바르게 살게 하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삶의 기반이 송두리채 무너진 자들은 “한 아들”을 소망하고 믿으며 그분이 주실 지혜를 통하여 잿더미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놀라운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칠흑같은 어두움을 비추는 “그 큰 빛”을 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명철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우리의 길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한 아기” “한 아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경탄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전능하신”으로 번역된 단어는 주로 전쟁터에서 싸우는 용맹스런 용사에게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하여 싸우시고 승리를 주시는 “그 크신 용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방황할 때 늘 적들의 위협과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안전, 안보 문제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애굽에서 노예였지 군사들이 아니었습니다. 전술도 잘 모르고 제대로 된 무기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나아가 원수들을 물리치시는 용사이십니다. 이사야 당시 백성들은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계속될 공격 앞에 간장이 녹아 내립니다. 이사야는 전능하신 하나님, 곧 메시아가 그들을 위하여 싸우시고 승리를 주시며 자유케 하실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전능한 용사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를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전투는 쉬지 않고 치열합니다. 우리 자신과 내면의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죄, 혈기, 불신, 절망과 싸워야 합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정욕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영적인 갈망을 없애고 예수님을 잊고 살게 합니다. 이러한 전투에 지쳐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전능하신 우리의 용사,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죄와 사망을 대항하여 영원한 승리를 얻으시고 자유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영존하신 아버지입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영존하신 아버지”라 합니다. 성자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은 분명 구별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사야는 그를 영존하신 아버지라 부른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은 아니지만 성자 하나님으로서 아버지가 하시는 그 일을 그 백성을 위하여 하신 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역은 자녀를 양육하고 보살피며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그 양들을 기르시고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리고 그릇된 길을 갈 때는 사랑으로 바로 잡아 옳은 길을 가게 하십니다. 이사야 당시 많은 아버지들이 싸우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메시아는 영존하신 아버지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없지만 영원히 계신 메시아가 이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양이고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모두 양같이 그릇된 길을 고집할 때 우리를 찾아 오셔서 진리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의지하며 그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야 알며 그분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넷째,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사야 당시 사람들은 평화를 잃었습니다. 전쟁으로 사회는 황폐해졌습니다. 마음의 평강은 멀리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평강의 왕으로 부릅니다. 메시아가 잃어 버린 평강을 되찾아 주고 깨진 관계를 화평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으로 더불어 평화를 누리며 화평케 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평화는 마음의 평강을 줍니다. 오늘날 사회는 국가, 사회, 계층간의 갈등으로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정치, 성별, 인종, 이념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교회도 여러 이유, 기준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믿음을 기준으로 신자와 불신자로 나누십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한 자입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반목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평화를 외치는 메신저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평화가 세상의 반목과 갈등을 끝내고 평화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나누어 보세요. 한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b. 여러분은 예수님은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습니까? 평소에 예수님과 가깝습니까 아니면 필요할 때만 찾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지혜, 승리, 보살핌, 평화가 되신다는 것을 믿고 즐거워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지혜와 능력만으로 살려 하시는지 생각해 보세요. c. 여러분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십니까? 예배 중에 예수님을 어떻게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흥분케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즐거워하는 것 중에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d. 여러분은 마음에 평강이 깨질 때 그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여러가지 궁핍에 시달리고 패배감에 사로 잡힐 때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마음과 삶의 고난을 극복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놀라우신 지혜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을 어떻게 의지하며 즐거워 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3. 기도할 내용 a.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목장 모임이 부흥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b.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고국의 평안과 바른 통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c. 교회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되고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d.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 교회의 영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f. 교회에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g. 직장을 구하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다음 분들입니다: Sheldon Landgrave. h. 성경번역 박혜리 선교사님, 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이 영상선교사님(신혜 아버지)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