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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the Light of Salvation 김정호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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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장 예배 말씀 공부와 나눔-127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즐거움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7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다윗의 위에 앉아서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9:1-7)

 

주제: 예수님은 구원의 빛이시기에 우리는 그를 우리 마음에 환영해 모셔야 합니다.

 

서론: 라스베가스의 밤은 낮처럼 환합니다. 휘황찬란한 네온 사인과 거리의 많은 등들이 거대한 기둥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막을 운전하다 멀리서 라스베가스 쪽으로 보면 도시의 하늘로 불기둥이 솟아 오른 것처럼 보입니다. 깜깜한 운전에 기둥은 이정표 역할을 해줍니다. 과거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은 기둥을 보고 여호와의 임재를 의식하고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장식한 라스베가스의 등들은 하나님의 임재와는 거리가 멉니다. 유흥의 빛이 밤을 장식한 것입니다. 밝은 배후에서는 도박, 매춘, 마약, 인신 매매 각종 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맘몬주의를 상징하는 빛이 라스베가스를 장악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도박으로 거래 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과 전문 도박꾼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도박장을 향합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다. 마약 중독에 삶을 송두리채 빼앗긴 자들이 많습니다. 라스베가스의 빛은 죄악에서 구해 주는 빛이 아니라 죄를 부추기는 흥분의 빛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빛으로 땅에 오셨습니다. 성탄절 밤을 환하게 장식하는 이유는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흑암 가운데 신음하는 백성에게 빛이 비취었다고 말합니다. 빛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망합니다. 주권을 빼앗기고 자유를 상실 당한 고통 중에 있습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이들에게 으로 선포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죄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로 인하여 고통하며 신음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이들에게 구원의 빛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빛을 마음에 환영해 모셔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쇼핑에 바쁩니다. 구주의 탄생의 의미는 잊혀지고 가족들 끼리 선물 교환하는 일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성탄의 참된 의미는 예수님이 어둠의 땅에 구원의 빛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드려야 합니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자들은 빛을 미워합니다. 자신들의 추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빛을 사랑하는 자들은 빛을 즐거워하고 가운데 거하려 합니다. 예수님이 땅에 오셨을 사람들은 빛을 거부하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19 정죄는 이것이니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3:19-20).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성탄의 주제이십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빛인지를 살펴 보려 합니다.       

                 

1.  배울 내용

첫째, 예수님은 소망의 빛이십니다. 죄는 비참함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절망케 합니다. 북왕국은 우상 숭배를 범하고 말씀을 떠나므로 멸망을 초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사용하여 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였습니다. 왕국의 북부에 위치한 스불론과 납달리 땅은 가장 먼저 공격을 당하고 점령됩니다. 이들의 가옥을 불타고 재산을 몰수 당하고 양식은 약탈 당합니다. 자랑하는 자들이 무참하게 살해 당합니다. 삶의 터전이 송두리채 무너져 내립니다. 이는 모두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이렇게 파괴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두려움, 염려, 절망을 초래합니다. 가옥이 불타고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면서 평안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금 회복될 없는 지경에서 빠져나갈 없을 절망할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흑암입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구원의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에게 비취었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시제는 현재 완료형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언하면서 현재 완료형 시제를 사용한 것은 미래의 사건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에서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메시아가 것이며 그가 구원의 빛을 비추어 것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촉구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오셨습니다. 백성 가운데 소망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로마의 압정에 둘려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소망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죄에 눌려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용서와 의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구원이 빛이 되었습니다. 절망하는 자들에게 소망의 빛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소망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죄에 눌려 절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합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영혼의 치명적인 병입니다. 병을 치유하실 분은 소망의 빛되신 예수님입니다. 절망, 흑망이 가득한 영혼을 비추어 주는 빛은 예수님입니다. 우리 영혼에서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소망으로 가득 채우실 분은 예수님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지라도 여전히 소망할 있는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소망의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탄을 축하하기 위하여 화려한 등으로 집을 장식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기분을 밝게 하려 합니다. 하지만 깊은 내면에서는 삶에 지쳐 실망하고 절망에 눌려 있습니다. 이들을 치유할 있는 빛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믿는 자에게 소망이 되십니다. 믿는 자의 소망은 단순한 소원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을 텐데 라는 넋두리가 아닙니다. 상황은 변합니다. 그래서 소망하는 것도 이루질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예수님보다 확실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소망을 두는 것은 결코 실패할 없습니다. 성탄절은 구원의 , 소망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며 보내는 시간입니다. 주님과 멀어졌던 관계를 회복하며 소망으로 절망을 내쫓는 시간입니다. 다가오는 새해를 소망할 있는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소망의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우리에게 소망의 시간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유의 빛이십니다. 나라를 잃은 자들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왕국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 가고 알지 못하는 이방 땅에서 이곳 저곳으로 흩어집니다. 민족의 독립에 대한 소망의 빛은 꺼진 같습니다. 주권과 자유를 회복하는 것은 이들의 소망입니다. 이사야는 이들에게 메시아가 자유함을 주실 것을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4). 메시아가 구원의 빛으로 오시면 무겁게 멍에와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마른 자에게 시원한 잔은 영혼까지 시원케 합니다. 자유에 목마른 자에게 자유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우리 한민족도 외세의 침략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일본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유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지를 압니다. 해방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 빛이 되신다고 의미를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인가에 속박된 경험이 있다면 자유의 가치를 것입니다. 죄에 눌려 삶을 송두리채 유린당해 신음한 경험이 있는 자에게 용서를 통하여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사실 죄는 우리를 지배하고 종으로 전락시킵니다. , , 섹스, 마약, 쾌락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삶은 비참합니다. 일에 매이고, 책임에 매이고, 시간에 매여 살아가는 이들이 허다합니다. 종교에 매인 자들도 많습니다. 율법주의에 매여 기쁨을 상실한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죄와 삶에 매여 사는 자들에게 자유는 분명 의미 있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유하려고 삶의 멍에, 결혼의 멍에를 벗어 던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다른 것에 매여 있음을 깨닫습니다. 근본적인 자유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 발견할 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기꺼이 매고 자유를 얻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경험으로 자유를 누릴 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주신 자유의 빛을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누리가 있는 자유를 당연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예수님을 핏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죄를 범하는 사용하지 말고 사랑으로 섬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 빛이십니다. 성탄절에 자유를 누리며 예배하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나누어 보세요.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b.     여러분은 어떻게 성탄절을 보내십니까? 성탄절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성탄절의 의미를 알고 그에 맞게 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성탄절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세요.              

c.      성탄절을 지나며 마음에 절망하는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여러분의 절망에 어떤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소망의 빛이 되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d.     여러분은 삶에서 무엇에 쉽게 얽매이십니까? 예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십니까? 이번 성탄절에 주님 주신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곰곰이 묵상해 보세요. 삶에 적용하여 자유함을 누려 보세요.            

 

3. 기도할 내용

a.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이끌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목장 모임이 부흥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b.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고국의 평안과 바른 통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c.      교회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되고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d.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     교회의 영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f.      교회에 함께 일할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g.     직장을 구하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다음 분들입니다: Sheldon Landgrave.

h.     성경번역 박혜리 선교사님, 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영상선교사님(신혜 아버지)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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