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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e-Quenching Faith-3 | 김정호 | 2020-10-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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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예배 말씀 공부와 나눔-118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11:32-34) 주제: 하나님은 불 같은 시험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기에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한다. 서론: 얼마 전에 울산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한밤에 발생한 이 화재로 4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3층에서 시작한 불은 삽시간에 33층까지 번졌습니다. 거센 바람으로 인해 불길을 잡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불과 연기로 인해 33층에 갇힌 3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고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겨우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33층에서 뛰어내리려 그물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방관이 들어와 가장 상태가 안 좋은 한 여성을 업고 1층까지 내려왔습니다. 이 여성은 혼미한 가운데 자신을 업은 소방관을 보고 “헬멧을 쓴 신”인가 생각했고 후에 생명을 구해준 그에게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접하며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에 절하길 거부하여 풀무 불에 던져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를 건져 주신 하나님이 떠오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불에 던져지는 고통을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인해 불같이 견디기 어려운 시험은 경험합니다. 궁지에 몰려 빠져나갈 수 없을 때 두려움과 절망에 빠집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응답이 더디거나 없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딘 계신 것인가?”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건져 주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나님을 믿기에 이러한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33층의 여성은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에 구조대가 도착하였습니다.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고 구조대를 기다라는 동안에도 구조대는 쉬지 않고 불길과 연기를 뚫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 시험을 당할 때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때에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에 던져졌을 때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불 시험 가운데 그 자녀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결국 믿음이란 불 시험 가운데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점을 살펴 보려 합니다. 1. 배울 내용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에 신실함으로 반응하십니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에 분노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살 기회를 다시 한번 주며 절할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자신의 관대함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지키며 죽을지언정 우상 숭배를 범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풀무 불을 칠 배나 더하게 하여 그들을 풀무에 던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불에 녹아지는 것을 보며 분노를 풀어 보려 풀무 안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죽지 않고 다른 어떤 인물과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자기가 보는 앞에서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손에서 건져낼 신이 없다고 장담했는데 그가 틀렸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고백이 옳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들의 충성에 하나님의 충성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풀무에 던져 지기 전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왕도 여호와의 능력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풀무에서 건실 신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하나님께서 풀무에서 건져 주실지 아닐지는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풀무에서 죽고 믿음을 지키려고 작정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헛되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 능력을 나타내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느부갓네살은 세 신하의 믿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을 인정하였습니다. 전에는 몰라서 여호와를 모독했지만 풀무 불 구원을 목격한 후에는 오히려 여호와를 모독하는 자들을 죽이겠다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킨 세 신하를 더 높은 지위로 높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믿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궁극적인 결과는 구원이며 상급임을 보여줍니다. 혹 믿음으로 인해 순교를 당한다 해도 하나님이 믿는 자의 영원한 상급이 되어 주십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최후 상급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중에도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풀무 불에 들어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왕에게 심문을 받을 때는 묵묵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타협하지 않겠다고 믿음을 선포할 때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풀무에 던져졌을 때 그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들 가운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함께 거니시며 교제하셨습니다. 이들의 고통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그 고통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으셨습니다. 단순히 부하 하나를 보내서 문제를 해결 주라고 하신 정도가 아닙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서 구경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풀무 불이 폭발하는 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자신이 아니면 그들이 살 수 없음을 아셨기에 그들을 구하려 풀무 안으로 들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부재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고통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너무 고통스러워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음을 들으시고 아파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예기치 않은 고난을 당할 때 당혹해 하며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배운 대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을 행사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바로바로 응답해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론 하나님을 만나려 하는데 마치 하나님께 우리의 면전에 대고 문을 꽝 닫아버리는 것 같은 때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오랜 침묵이 흐르고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실망으로 돌아섭니다. 이러한 믿음의 갈등은 믿음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터를 다지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의 한가운데서 절규할 때 그분의 임재와 능력을 확실하게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부요와 형통에 눈이 멀 때는 하나님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는 하지만 의례적인 감사일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피상적일 뿐입니다. 하지만 고통 중에 우리의 절규는 진실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소원합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와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시고 빗으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통을 겪으시고 건져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죄와 사망으로 고통하는 백성들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이들의 세상 안으로 들어 오신 것입니다. 이유는 이들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이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죄인으로 이 땅에 산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죄의 결과가 지배하는 세상은 고통이 충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을 보며 우리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의 죽음과 고통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예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킨 것의 대가가 풀무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인정해 주시고 높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영원히 하나이신 성부 하나님에게 외면 당하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고통의 절규는 고통 받는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는 불과 같은 시험을 겪으며 고통할 때 이 예수님의 절규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고통을 느끼며 고통을 인내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셨기에 우리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영광이 됩니다. 고통은 인생의 불청객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신자에게 믿음으로 인한 고통은 동반자가 됩니다. 이 동반자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나누어 보세요. 한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b. 믿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손해, 아픔, 핍박, 고통을 여러분은 어떻게 다루십니까? 혹 고통 중에 “하나님이 날 버리신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고통 중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 쉽습니까 아니면 어렵습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c. 하나님이 여러분의 고통을 방관하신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 때 어떤 마음이 드셨습니까? 그리고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이 함께 아파하신다는 것을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때는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d.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어떻게 여러분과 함께 고통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해 준다고 믿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여러분의 고통을 다루는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생각하며 여러분의 고통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십니까?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신 주님을 위하여 여러분은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3. 기도할 내용 a.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목장 모임이 부흥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b.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고국의 평안과 바른 통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c. 교회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되고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d.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 교회의 영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f. 교회에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g. 직장을 구하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다음 분들입니다: 김영훈, Sheldon Landgrave. h. 성경번역 박혜리 선교사님, 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이 영상선교사님(신혜 아버지)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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