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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e-Quenching Faith-2 | 김정호 | 2020-1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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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예배 말씀 공부와 나눔-117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11:32-34) 주제: 하나님은 불 같은 시험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기에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한다. 서론: 일을 성사시키려면 타협은 필수적입니다. 서로 대화를 통해 서로 어느 정도 양보할 때 타협안, 절충안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일이 결렬되지 않고 성사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110프로 만족하지는 않지만 양측이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타협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타협하는 것은 이러한 타협과는 다릅니다. 믿음을 타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과가 좋지 못합니다. 당장은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지만 종국에는 낭패를 보게 됩니다. 어떤 한 예쁜 자매가 있었습니다. 노래도 잘 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자매였습니다. 그녀를 사랑하여 편지로 그 마음을 표현한 가난한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도 그가 싫지 않았습니다. 그 신학생의 순수함에 마음이 열렸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중매가 들어 왔습니다. 상대는 유망한 정치 가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법무 장관이었고 아들은 사법 고시를 통과한 사람이었습니다. 재력이 좋은 가문에서 이 자매에게 청혼한 것이었습니다. 자매는 가난한 신학생과 불신자 법조인 사이에 누구를 장래 남편으로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였습니다. 끝내 그녀는 불신자 법조인을 남편으로 택하였습니다. 가난한 신앙인 보단 재력가 집안 사람을 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믿음 생활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남편 집안이 반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 출석을 중단하고 그녀는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남편은 어느 일요일 승마를 하다가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신혼 생활을 그렇게 끝나고 그녀는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재력, 권력, 성공을 따라 가려 했을 때 그녀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믿음을 타협하면 위기를 벗어나고 성공을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굳게 설 때 하나님의 건져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다니엘 세 친구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교훈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는 것은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타협하는 것입니다. 왕의 위협에 넘어가 우상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 불에 던져 진다 해도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참 믿음은 사람의 위협에도 그 진정성을 타협하지 않습니다. 타협을 미덕으로 여기며 정당화하는 세상에서 믿음을 굳게 지키고 타협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타협하지 않는 믿음에 대하여 살펴 보려 합니다. 1. 배울 내용 첫째, 타협하지 않는 믿음은 죄와 대화를 거부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음악대가 연주 했을 때 금신앙 앞에 절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느부갓네살의 모든 신하들이 절할 때 이들만 우뚝 서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의 눈에 확 띄었습니다. 이들에게 대한 보고가 왕에게 곧 들어갑니다. 왕은 분노하고 이들을 소명케 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단 3:14-15). 왕은 먼저 이들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이 사실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줄 것이니 절하며 목숨을 건지라고 종용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질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신이 자기의 손에서 건져낼 수 있겠느냐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을 도전합니다. 어떤 면에서 왕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며 절하도록 타이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려는 의도입니다. 위협과 함께 우상 숭배를 강요합니다. 마치 자기를 이길 신이 없는 것처럼 과시합니다. 이미 자신을 신으로 간주한 인간의 교만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왕의 위협을 무시하고 믿음을 타협하지 않습니다. 왕의 제안을 거부하고 믿음의 진정성을 지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들의 한 말은 다음과 같이 믿음의 진정성을 증거합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왕의 제안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이들의 마음은 확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죄의 달콤함을 제안하며 믿음을 타협하도록 유혹합니다. 죄가 얼마나 유익하고 좋은 것인지를 말하며 유혹합니다. 이것을 이기려면 단호하게 대화를 거부해야 합니다. 죄와 대화하며 마음을 열게 되면 당하게 됩니다. 왕이 살 기회를 다시 한번 준 것은 엄청난 유혹입니다. 이미 죽었을 수도 있는데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대단한 제안입니다. 죄는 이렇게 우리를 유혹할 수 있습니다.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것처럼 우상 앞에 절하도록 유혹합니다. 믿음은 이러한 유혹의 실체를 간파하고 대화를 멈추고 마음을 확정합니다. 이와 같이 타협을 유도하는 제안이나 대화를 거부해야 합니다. 단호함이 없으면 타협을 선택합니다. 죄의 제안을 듣기 조차 거부하는 것이 최선의 안전입니다. 하와가 타락한 이유는 뱀의 대화에 마음을 열고 그의 제안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죄와 대화 조차 거부하는 것이 믿음의 진정성을 지킬 수 있는 최상책입니다. 둘째, 타협하지 않는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들의 답은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입니다. 하나님은 극렬한 풀무든 제국의 왕이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십니다. 실로 그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불도 창조하셨고 느부갓네살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를 왕으로 세운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만사가 그분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그들을 건져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었다면 결코 죽음의 위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타협을 거부하게 합니다. 하지만 죽음의 위협이 마음을 사로 잡으면 믿음은 기력을 잃고 맙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기도 하지만 실생활에서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과 염려입니다. 믿음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려면 염려하는지 아닌지를 보면 즉시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께 맡기기 때문에 평안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전혀 떨림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두려움과 염려의 노예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하나님께 맡기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는 마음에 평안을 누립니다. 예수님이 풍랑 가운데서도 배 안에서 평안히 주무실 수 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십자가 처형의 극한 고통 중에도 아버지의 부활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상 숭배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위하여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셋째, 타협하지 않는 믿음은 기꺼이 죽음을 각오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을 소유하였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이들이 한 믿음의 선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8절). “혹 하나님께서 우리로 풀무에 타서 죽게 하신다 해도 우리는 절대로 우상 숭배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거짓일 수 없습니다. 순교로 믿음의 순수와 진실을 지키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를 세상은 감당치 못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믿는 신앙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죽든지 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섬기며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거짓 신들에게 절하며 안녕을 빌지 않습니다. 나무, 돌로 만들어진 무능한 우상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가장 미련한 짓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앙 양심상 그러한 짓을 범할 수 없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죽은 물건 앞에 절하는 우상 숭배를 범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진짜였습니다. 조금의 위로와 돈, 쾌락에 믿음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대 가운데 다니엘의 세 친구가 보여준 믿음은 참된 본이 됩니다. 죽어도 산다는 믿음이 기독교 믿음입니다. 이는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부활 신앙은 죽음을 초월합니다. 이러한 신앙이 타협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나누어 보세요. 한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b. 사람의 회유나 제안에 믿음을 타협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결과가 좋았습니까 아니면 나빴습니까? 타협하게 된 이유는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c. 현재 여러분이 겪고 있는 불같은 시험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진정으로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믿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d. 만약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실 것입니까? 순교에 대하여 생각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순교할 각오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3. 기도할 내용 a.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목장 모임이 부흥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b.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고국의 평안과 바른 통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c. 교회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되고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d.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 교회의 영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f. 교회에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g. 직장을 구하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다음 분들입니다: 김영훈, Sheldon Landgrave. h. 성경번역 박혜리 선교사님, 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이 영상선교사님(신혜 아버지)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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