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여성의 역할(2)Women’s Roles in the Church(II) | 운영자 | 2018-07-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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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여성의 역할 II Women’s Roles in the Church II
김정호목사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1-15)
[주제] 남자와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여전히 교회에서 기준이 되기에, 여자들은 교회안에서 목회자의 자리(권위)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서론] 요즘 한국에서는 워메드라는 남성 혐오 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도를 넘어서 남성에 대한 혐오의 독소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는 여성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여성들이 차별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남성들 중에 여성들을 성노리개로 사용하고 정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즉시로 멈추어야 하는 악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존중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높여주고 섬기는 것이 인간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바른 길입니다. 성경은 가정, 직장, 사회 속에서 여성에게 동일한 인권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합니다. 그렇지만 하는 일에는 다름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남성에게 적합한 일이 있고 여성에게 적합한 일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여성이 하는 일을 남성이 절대로 해서는 안되고 남성이 하는 일을 여성이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는 다름이 있기에 그것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이 복이 된다고 말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모두 없애는 것이 여성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아닙니다. 동등함을 인정하면서도 다름을 바르게 이해하여 서로 보완해야 함이 옳을 것입니다. 바울은 여성들이 공식적으로 교회를 대표하여 가르치거나 남성들 위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목사나 장로의 직을 금하였습니다(11-12절). 오늘은 왜 바울이 그것을 금하였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것입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원칙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대로 남자와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여전히 교회에서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교회안에서 목회자의 자리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바울은 금한 것입니다.
1. 배울 내용 a)남성의 교회 리더쉽은 아담의 머리됨과 동일시된다 바울은 13, 14절에서 왜 11, 12절과 같은 권면의 말씀을 했는지를 설명합니다. 13절은 아담이 이브보다 먼저 지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먼저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먼저 하와를 짓지 않고 아담을 먼저 지으신 것은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으로 이끄시고 그것을 가꾸도록 명하셨습니다. 천국과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손수 지으신 것을 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돕는 배필”이라고 해서 아담의 조수 정도로 어떤 여자를 만들어 주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동일한 단어인 “돕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께도 적용된 것을 볼 때 하와가 아담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을 전혀 뜻하지 않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와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요 서로를 보안해야 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 첫 가정의 머리로 아담을 세워주셨습니다. 머리가 된다는 것은 지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돌보아 주고 가정을 인도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권위를 아담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머리가 된다는 것은 섬김의 리더쉽을 뜻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3에서 말합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성부와 성자 하나님은 그 본질과 능력과 영광에서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의 머리는 성부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성자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아버지의 권위에 순복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머리되심을 인정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아버지를 섬겨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심에도 여전히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셔서 그 교회를 사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과 섬김으로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된다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자보다 나은 존재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가정의 지도자로 세우셨듯 남자를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머리됨이 교회안에서 남자의 리더쉽의 머리됨의 근거가 됩니다.
b)여성이 자신의 역할을 뒤집으려는 시도는 하와의 타락과 동일시된다 에베소 교회안에는 이단 문제가 있었습니다.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남자 리더쉽에 도전하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공예배의 질서를 깨고 교회안에 세우신 질서와 권위에 도전하였습니다. 이들의 근본적인 잘못은 남자의 역할을 차지하여 교회를 이끌려 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설명하려고 바울은 하와의 타락을 예로 듭니다. 아담이 속임을 먼저 당한 것이 아니라 그 아내가 뱀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넘어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해 주셨습니다. 아담은 이 말씀을 직접 하나님께 들었지만 하와는 남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뱀은 공격 대상으로 하와를 택한 것입니다. 아내를 꼬여 넘어지게 하면 남편도 통째로 넘어지게 할 수 있다는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직접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지만 가정의 영적 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내가 속임을 당하여 선악과를 그에게 주었을 때 그것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어야 했는데 그는 자신의 의지로 그 열매를 먹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모든 자손이 그 안에서 함께 타락하고 마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와도 뱀이 그를 속이려 할 때 남편에게 묻지도 않았고 오히려 이 타락의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선악과를 취하게 됩니다. 뱀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도록 의도된 질문을 던질 때 하와는 그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매우 잔인한 분으로 설명합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정합니다. 결국 그 열매를 보고 현혹되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가정의 지도자인 남편에게 묻지도 않았고 그는 주도권을 쥐고 뱀과의 거래에서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하와는 가정의 머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담이었습니다. 이둘 모두 자신의 역할에 신실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역할이 바뀐 것입니다. 하와는 아담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머리됨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어리석음 가운데 빠졌습니다. 사실 그는 온 인류의 머리였습니다. 그의 실패는 모두의 실패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의 실패, 곧 죄와 그 비참함을 유전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이야기를 잘 알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여성들이 남성의 역할을 취하고 자신들의 역할을 버린 것을 하와가 속임을 받아 죄를 범하게 된 것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가정과 교회안에서 역할을 바꾸어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역할을 따라 지혜롭게 행할 때 가정과 교회는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c)여성이 하나님의 정하신 역할에 충실하는 것은 경건함과 동일시 된다 15절은 성경에서 해석하기 가장 어려운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여성들이 자녀를 낳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해석입니다.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성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도 되고 믿지 않는 여성이 자녀를 낳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해석입니다. 어떤 이들은 “해산”을 은유적으로 해석해 어머니의 모성, 모성애에 충실하여 여성의 역할을 잘 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이 때에 “구원”을 죄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해산의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이란 단어는 디모데전서에서 모두 죄로부터의 구원을 뜻합니다. 2장 문맥도 그것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요? 먼저 구원받는 다는 부분의 주어는 단수로 “she”입니다. 그리고 “거하면”의 주제는 “여자들이”로 복수입니다. 전자는 14절 마지막 부분, 즉 하와에 대한 말씀이 15절 전반부로 이어져 “she”를 하와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해산이란 단어는 영어로 “the childbearing”입니다. 영어의 정관사는 특정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단순한 해산이 아니라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된 첫 복음 곧 여인의 후손, 마리아를 통하여 탄생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타락한 하와에게 여인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지닌 여자들이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정절, 믿음, 사랑, 거룩함은 바울이 말하는 경건의 덕목들입니다. 그래서 하와처럼 남편의 역할을 취하여 죄에 떨어진 에베소의 여인들이 하와처럼 여인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믿고 경건한 생활에 힘쓰면 하나님의 회복시키심과 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란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여성이 하나님의 정하신 역할에 충실하는 것은 경건함과 동일시 된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것이 여성에게만 해당되겠습니다. 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여자들에게 이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안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참된 경건과 그로 인한 많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고 서로를 보완하여 하나님의 뜻을 가정과 교회안에서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한 가지씩 나누어 보세요. b)한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c)남자들이 가정과 교회안에서 섬김의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과 교회안에서 남자들의 리더쉽이 실종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남성들이 섬김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성들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d)남성이 더 잘할 수 있는 것과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통하여 어떻게 교회를 화목되게 성장시켜 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e)가정과 교회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보완하는데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상호 보완적인 관계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3. 기도할 내용 a)한국과 미국에 있는 교회들이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해주세요. b)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이영상 선교사님(신혜 아버지)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c)교우들의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d)직장과 진로 문제로 기도하는 청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서로 기도의 내용을 나누고 중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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