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공급할 것들 (3) 1/26/2025 | 김 혁 | 2025-0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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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후서1:4-9절 개역개정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믿음에 공급할 것들 3 베드로후서
1:4-9
Sight & Sound Theatres라고 들오 보신 적이 있나요?
미국에 아주 볼만한 크리스천 뮤지컬입니다.
Lancaster PA 와
Branson MO 두 군데 도시에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
Jesus, Moses, 천지창조,
다윗, 에스더 등 을 공연합니다.
아주 수준이 높습니다.
정면과 양쪽 무대를 다 사용하여서 아주 입체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배우들이 실제 그 지역의 주민들이고 동물들은 직접 길러서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노래들도 잘합니다.
정말 화려하기도하고 감동적입니다.
더욱 힘써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은 공급하는 일은 합창곡과 비슷합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믿음의 삶에 조화를 이루서 아주 멋진 화음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베드로는 은혜의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멜로디에 그리스도인의 일곱 가지 성품들을 화음으로 공급시키라고 권유합니다.아마도 이런 삶의 합주곡은 우리 하나님이 관객 되시어 지켜보시고 흐뭇해하시고 박수를 치시고 엄지를 들어서 보이 실 것입니다.
믿음은 가장 기본입니다.
덕은 활력을 말합니다.
지식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사람을 알아가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절제는 모든 유혹과 시험으로부터의 자신을 지키고 영적인 자기 훈련에 관한 것입니다. 인내는 외부적으로부터 오는 시련에 대한 인내입니다.
시련은 마지막 날에도 있을 것이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After this I saw four angels standing at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holding back the four winds of the earth to prevent any wind from
blowing on the land or on the sea or on any tree. Rev 7:1) 마지막 날에 일어나는 대하여 설명할 때 사방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사방에서 오는 바람같이 성도들은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악보 위에 다음 세 가지의 음표를 넣어야 합니다.
경건 형제우애 사랑입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믿음의 실제 생활에 대하여서 말씀합니다.
경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세베이아’는 생활의 모든 면이 하나님과 아주 실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what
kind of people ought you to be? You ought to live holy and godly lives (2 Peter
3:11) 여기서 경건과 거룩한 행실을 같은 의미로서 사용하는데 경건은 어떤 종교적인 모습을 말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모든 행실에서 하나님께 하듯 하라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의 목회서신에서(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10회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의무를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여 진정으로 잘 어우러진 예배와 섬김의 실천 곧‘경건’입니다.
경건은 단지 거룩한 양 드러내는 만들어진 형식이 아니라 영적 훈련의 결과로 틀이 잡힌 삶의 형식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꽉 채워진 내실입니다.
경건은 제일 먼저 우리의 인생의 목적과 영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하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열정적이고 질서 안에서 여러 가지 유혹들을 절제하고 인내 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또한 곧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높이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교회들은 이것을 놓치고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사회를 먼저 말합니다.
그저 구제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말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좋은 말들을 듣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가장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자주 하나님이 ‘먼저’라고 말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말하시고 외우십시오.
나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앞에서’라는 모토를 말하고 그렇게 살려하시는 것이 곧 예배입니다.
주일을 가장 우선적인 날로 정하십시오.
주일 한번 어긴다고 하나님이 벌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초기의 성도들과 지나간 성도들은 매 주일 을 거룩히 구별하고 이 날을 귀하게 여기고 모여 예배함으로서 힘을 얻었습니다.
2025년은 예배하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의 삶에 잘 질서 잡힌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경건은 형제우애와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IPA: /nɔblɛs ɔbliʒ/, 영어:
Nobility Obliges)란 말을 아십니까?
저도 자주 듣는 말인데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서 찾아보았습니다.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 할 것은‘높은 도덕성’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가족 여행을 외국으로 갔다고 합니다.
렌트카를 예약을 했는데 제 시간에 나오지 않고 불친절 해 보이는 직원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화가나서 소리를 높여서 잘 안 되는 영어로 쏘아 부쳤습니다.
겨우 진정을 했지만 직원이나 목사님이나 험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마침내 차를 받아서 나왔습니다.
이때 딸이 자신에게 한마다 했다고 합니다.
아빠 왜 그렇게 흥분을 해
! 아빠는 목사님이잖아!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별명이 바락 목사님!이 되었다고요.
이 목사님은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 나는 목사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격이 있는데
......
우리는 ‘왕의 자녀로서의 품위와 품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는 이 일이 실제 생활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애를 써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선택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마음에 은혜가 주어지면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냥 사람들이 보고 싶고,
섬기고 싶어집니다.
이런 마음에 생길 때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흘러 버려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먼저 되면 형제들이 눈에 보이고 사랑 하게 됩니다.
반드시 순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형제우애’는 잘 지내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한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 Be devoted to one another in brotherly love. Honor one
another above yourselves.
그래서 형제우애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특히 열악한 형편에 처한 형제자매를 향하여 나가고,
설사 그 대상이 교회 밖의 사람일지라도 그를 형제자매로 포용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신앙적 교제가 이웃과의 우애로 확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의무적으로 사랑하면 금방 지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신이나면 그 다음도 신이 납니다.
형제 우애의 결국은 조건 없이 대상을 차별하지 않고 두루 품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싸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사랑으로 결론짓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최고의 선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보여주신 그러한 종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 하다가 지치면 더 큰 사랑인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신 일을 생각 하면 되겠죠.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믿음으로 한 일들이 사랑으로 마무리가 안 되면 실패한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있을 경우 시시비비를 가리고 난 후 서로 사랑이라는 띠로 메고,
사랑이라는 이불로 덮는 것입니다.
종종 어떤 문제는 해결 했는데 공동체가 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형제우애와 사랑으로 덮기를 원하십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에서 교회 안에서 히브리과부들이 자기들보다 헬라 과부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시기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균등하게 사랑으로 나눈다고 했지만 도리어 분쟁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도 많이 일어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고후13:7)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고후13:17)
믿음의 ‘교향곡’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납니다.
믿음으로 그 기초를 세운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 절정을 이루는 일곱가지 속성들을 공급함으로써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경건을 이루시겠습니까?
우리는 나타내어야 형제우애와 사랑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오늘은 하나님의 성품
7가지를 살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7가지 성품)
갖추고, 또 넉넉하면,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부지런해지고 열매를 맺게 되지만,
만약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옛 죄에서 머무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For if you possess these qualities in increasing measure, they will keep you
from being ineffective and unproductive in your knowledge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if anyone does not have them, he is nearsighted and blind, and has
forgotten that he has been cleansed from his past sins.베드로후서 2
Peter 1:8-9 )
이러한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의 덕목들은 신자들의 삶에 늘 머무르면서 더욱 증폭 되어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무기력해지지 않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반대로 이러한 것들이 부재하거나 늘 제자리걸음 가운데 있다면 그 삶은 무기력하게 늘어지고 열매 없이 초라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신앙적 진보가 없는 자들을 ‘맹인’ 멀리 보지 못하는‘근시안’으로 규정합니다.
종교개혁을 이룬 목사님은 “매 단계는 다음 단계를 생각나게 하고 촉진 시킨다.
다음에 나오는 덕목은 앞에 오는 덕목을 풍성 하게 하고 완성 시킨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활력이 있고 질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절제와 인내경건 형제우애와 사랑을 통하여 더욱 믿음이 단단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폭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더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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