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공급할 것들 (1) 1/12/2025 | 김혁 | 2025-01-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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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후서1:4-9절 개역개정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믿음에 공급할 것들 (1) 베드로후서
1:4-9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어떤 것들 외모,
환경, 지식등과는 상관없이 이 믿음은 보배롭습니다.
아주 가치 있고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이 자라가도록 예수님의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2025년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알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성도들은 주를 부인하는 자들과
(2:1)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권위를 멸시하고 육체적 정욕에 빠지도록 유혹해서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오심과 능력을 교묘히 꾸민 신화적인 이야기로 전락하는 풍조,
하나님이 인간 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방종으로 이용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문화들로 성도들은 위기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유혹과 시험으로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 가버린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오늘날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속담이 그들에게 사실로 들어맞았습니다.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2:22)Of
them the proverbs are true: "A dog returns to its vomit,"and, "A
sow that is washed goes back to her wallowing in the mud."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힘들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알아가는 것이 법을 지키듯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알아가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베드로후서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믿음’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이 믿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믿음에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더하라 고 합니다.
make every effort to add to your faith
goodness; and to goodness, knowledge; and to knowledge, self-control; and to
self-control, perseverance; and to perseverance, godliness; and to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to brotherly kindness, love.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더욱 힘써 더하라’
make every effort to add 고 합니다.
계속하여 말하기를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For
if you possess these qualities in increasing measure, they will keep you from
being ineffective and unproductive in your knowledge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if anyone does not have them, he is nearsighted and blind, and has
forgotten that he has been cleansed from his past sins. 이 말씀에 의하면,
더욱 힘써 더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닮아가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힘써 다하지 아니하면 시각 장애인이 앞을 보지 못하듯이 하나님의 은혜 보지 못하고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힘써 더하여야 할
7가지의 자질들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다 하라고요?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입니다.
이것을 자세히 보기 전에 먼저 동사 ‘더 하라’를 봅시다.
이것은 ‘연극용어’입니다.
완전한 연극 또는 화려한 무대를 위해서 무대,
세트, 음향, 조명을 할 수 있는 만큼 더하여서 최종적으로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어느 것도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연극이나 뮤지컬
Fine Art라 부릅니다.
멋있는 예술이지요,
좋은 뮤지컬은 하모니입니다.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Main Actor, 조명,
무대,
Supporting Actor 등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종 연기대상 수상자가 소감을 말할 때 "이 상은 저 혼자의 상이 아닙니다.
모두의 것입니다."
리버티 신학교에서 리더쉽을 배울 때 교수님이 리더쉽은
Art라고 하더군요.
그 이유는 역시 앞에서 언급은 뮤지컬이
Art인 이유와 비슷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때 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가히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은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곧 불협화음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다양한 자질들이 한데 어울러져 균형 잡힌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들이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하고 ”
(행2:42)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가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골
3:16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자신을 알아가도록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실 때는 우리의 신앙이 조화를 이루어 자라도록 기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도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조화 있게 하여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근근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우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하라’ 할 때 ‘더욱 힘써’ 하라고 합니다.
'더욱 힘써'
라는 말을 마음에 담으십시오.
우리가 “힘을 주어 의지를 가지고 열망하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알아가는 열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어느 것도 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열망을 가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열망을 가지기를 기다리시고,
성령을 통하여 그 마음을 불어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7가지의 자질을 살펴봅시다.
이것을 좀 더 멀리서 마치 숲을 관찰 하듯이 보면,
이 자질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로이드 존스라는 목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덕 지식은 믿음의 특성 절제 인내 믿음의 내적 기질 경건 형제우애 사랑은 관계를 설명합니다. 오늘은 앞의 두 가지 자질인 덕과 자질을 다루고 다음 주는 나머지 믿음의 내적인 기질 절제 인내를 사랑의관계인 경건과 형제우애를 살피겠습니다.
믿음은 가장 기본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말 할 때,
누구는 믿음의 좋다.
믿음이 강하다 라는 말을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보여지는 행동이나 삶이 활발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힘이 있는가?
활동성이 있는가?입니다. 믿음은 대체로 그 사람의 기질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덕은
'활동'과 '힘'을 의미합니다.
능동적인 믿음,
힘이 넘치는 믿음 대담한 믿음 활기찬 믿음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무기력하게 하고,
힘이 없게 만드는 일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의 믿음을 활발하고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을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기술 발전은 버튼 혹은 작은 칩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거의 하지 않아도 되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런 간단 한 조작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마음을 하고 의지적으로 더욱 힘써 충분히 공급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 저는 왜 믿음의 자라지 않는 것일까요?
라고 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신앙생활이 게으러다는 것입니다.
영적 무기력과 권태에 빠지지 말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그저 기다리지 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걷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기회를 나의 것으로 삼아서 덕을 공급하라는 것입니다.
일곱 교회 중 차지도 뜨겁지 않는 리오디기아 교회의 믿음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머물러 있거나 화석화되면 안 됩니다.
믿음은 능동적이고 활기 있고 움직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일어서서 문을 열고 나오십시오!
성경을 펴서 읽으십시오
! 아침에 혹은 어느 순간이라도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을 때 주저 하지 말고 행하십시오. 다음은 활기찬 믿음에 지식을 충분히 공급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거짓 된 믿음 혹은 통제되지 않는 믿음 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예로는 이단들의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믿음의 활발함이다.
이들의 믿음을 곧 망하는 것입니다.
본인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망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하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충동 적인 믿음,
절제 되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예) 성격이 급했죠,
말고의 귀를,
말이 앞서죠.
나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세 번 부인 했죠.
바울도 동일합니다.
잘못된 유대교의 열정적인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그 열정을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바꾸셨습니다.
믿음은 감정에 의해서 이렇게 저렇게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성과 합리적인 것에 의해서 통제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하나님의 뜻에 혹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의해서 통제 되고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활발한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더 많아 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믿음을 통제하게 해야 합니다.
예) 수련회 갔다가
1억 약속한 어린아이 열정적인 믿음은 자신의 생각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되고 믿음의 선배들의 조언을 수용합니다.
2025년의 주제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더욱 힘써 넣고 추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응원 하실 것입니다.
나의 믿음에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원래 이래!
내 성격이 내성적이라 어쩔 수 없어!
라고 머물러 있지 말고 믿음의 활력을 불어넣어서 내 삶이 혁명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많이 알아감으로 건강한 활력이 넘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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