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고 싶은 대로 12/1/2024 | 김혁 | 2025-01-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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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역대하18:18-22절 개역개정18.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 1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0. 한 영이 나와서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21.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내가 듣고 싶은 대로❜ As I want to hear 역대하 2 Chronicles 18:18-22 여러분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수고했어,
잘했어, 역시 든든해"가
55.6%(242명)를 손꼽았다.
"우리 함께 잘해보자"가
22.7%(99명),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가
16.5%(72명)를 차지했다. 선배가 후배로부터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로는
35.4%(154명)가 "선배는 배울 게 많은 사람입니다"를 손꼽았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 최근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언제 들었고 그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 명의
'왕'이 등장하고 다수의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을 대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듣고 싶은 원하는 말보다 더 앞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같이 두 개로 분열 되었습니다.
남을 유다 북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4 왕이고,
그의 이름의 뜻 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입니다.
이름에 맞게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잘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을 잘 듣고
, 다스림을 잘 받는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습니다.(17:3)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무얼 해도 잘 되었고,
축복 받은 여호사밧
'왕'은 국방을 튼튼히 하고 나라를 강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너 참 잘해!” 라고 칭찬을 들은 진짜 이유는 “다윗을 따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이었고
(3)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과 목상들을 유다에서 제거하였기
"때문입니다.
(17:6) 여호사밧은 철저히 신앙적 실천을 통해서 나라를 강화하고 왕권을 굳건히 하고 나라가 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의 개혁은 제
3년에 실시했습니다.
1) 방백들을 보내어 유대백성들을 가르치게 하고 2)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보내어 율법 책을 가지고 온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순회하면서 백성들을 돌아보고 격려하는 동시에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16세기에 루터 칼빈 쯔빙글리 가 있다면
2500년 전에는 여호사밧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과 유다를 더욱 축복하셨습니다.
1) 유다 사방의 나라에 두려움을 주고 2) 이들로 유다에 조공을 바치게 하고 3) 견고한 성을 건축해서 4) 군사력 강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여호사밧은 자신의 생각과 자기가 듣고 싶은 말보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고자 하는 것에 관심이 두고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도 여호사밧은 아합과는 달이 미가야 선지자의 말에 귀와 마음을 열었습니다.
'주님 말씀 하시면 이란 찬송이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그러나 오늘 본문은 대조적으로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그 말이 아니면 무시해 버리는 두 부류를 소개합니다.
역대기의 저자는 대조를 통해서 여호사밧을 더 돋보이게 하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다고요? 순종이 제사보다. 듣는 것이 기름보다
먼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행동한 아합 입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치자고 제안합니다.
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나아가려면 이 지역을 치는 것이 유리합니다.
당시에는 땅을 확보하는 전쟁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살고 있는 이웃 나라를 전쟁을 일으켜서 빼앗으려고 합니다.
분명한 명분이 없이 심심해서 전쟁을 하는 격입니다.
아합은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 전쟁을 불사하고 이것을 형제관계인 남 유다와 여호사밧에게 동맹을 맺자고 제안 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가문과 혼인 관계를 통해서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려고 했기에 명분 없는 전쟁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선지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합은 나도 선지지에게 물어 본다고 하면서 선지자
400명을 데리고 옵니다.
그러나 ‘미가야’ 선지자는 제외시킵니다.
아합은 애당초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생각과 야망을 이루는데 거짓 선자들을 이용 하였습니다.
아합은 자신이 듣고자 하는 대로 듣는 사람이기에 이미 선지자
400명은 아합을 위하여 예언하는 아합의 사람들이었습니다.
400명은 이구동성으로 올라가서 전쟁을 하라는 것입니다.
(올라 가소서 하나님이 성읍들을 왕의 손이 붙일 것입니다.)
이들에게
"거짓말하는 영이 그들에게 들어갔기 때문이다"라고 18-22에서 말씀합니다.(18-22)
여호사밧은 이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다른 선지자는 있는지 물었습니다.
처음에 제외 시켰든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다고 말하고는 아합은 미가야는 “한 마디로 마음에 들지 않고 늘 나에게 좋지 않는 예언 만 하니 기분 나쁘다"라는 것입니다.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가야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다른 예언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예언자께서도 그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과연 그 왕과 그 신하입니다.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입니다. 미가야가 대답합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다만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미가야가 왔을 때 여호사밧은 미가야 다시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주님의 이름으로 나에게 말을 할 때에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겠소?"
결국 이 말을 들은 아합은 전쟁에 나가서 돌아 올 때까지 미가야를 옥에 가두라고 하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아합은 자신이 원하는 말만 듣기를 원하고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합에게 많은 선지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선지자들을 이용할 뿐입니다.
역대기는 아합의 불 신앙적 자세를 여호사밧과 대조 시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더욱 돋보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400명의 선지자들은 한수 위입니다.
대표적으로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내가 아주 진실 되고 예언 잘 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자기가 만든 철 뿔을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강력히 예언하고,
나중 진짜인 미가야의 빰을 때리면서 저주합니다.
시드기야가 미침 강한 영향은 다른 선지자들도 같은 예언을 하게 합니다.
400명은 많은 숫자이죠.
그런데 한 사람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은 400명 모두가 철저히
"이 전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쟁이고 틀림없이 이긴다"라고 하면서 마치 하나님이 무모하고 명분 없는 전쟁을 좋아하는 하는 신으로 말합니다.
400명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고 왕에게 좋은 말만 들으면 되었습니다.
권력 앞에서 왕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이들을 눈을 멀게 할 뿐이었습니다.
반면 미가야는 옳고 그름을 알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지 어떤 일 하시는지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미가야는 아합과 시드기야 선지자의 위세에 굴하지 않고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두렵더라도 그것을 감수합니다.
그리고 그는 경고하여 예언하기를 “전쟁 후 이곳으로 돌아올 것은 아합이 아니라 오직 백성들 뿐이며,
이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 같아서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결과는 바로 이루어집니다.
아합과 여호사밧 선지자
400과 미가야 선지자
1명의 대조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 다시 첫 번째의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 최근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언제 들었고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은 나의 생각과 고집을 말씀에 비추어서 꺾는 경험이 있어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마음속에서 그게 아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 같아!
라고 하여야 합니다.
가감하게 하나님의 편을 선택하는 신앙적 실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구걸하든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웁니다.
걷고 뛰고 모래하는 것은 그가 평생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 은과 금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이름으로 명한다.
일어나 걸어라” 그리고
4장 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는 사람이 많으니,
남자 어른의 수가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 위기를 느끼고 자존심이 강한 유대의 지도자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존심은 더 믿는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고 심문하면서 부탁도 아닌 명령합니다.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이런 말을 했죠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 사도행전
4:19-20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 맞닥 드렸을 때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만 두든지 아니면 맞서든지
... 성령께서 마음에 이야기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잘 듣고 잘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읽을 때 기도 할 때 생각이 지속될 때 12월 한 달을 남겨두었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강력한 돌보심을 경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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