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입니다 11/10/2024 | 김혁 | 2025-01-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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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4:18-25절 개역개정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입니다. 롬
4:18-25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가 종종 어떤 분에게 감사를 표현하려고 카드를 쓰거나 선물을 고를 때 고민을 하게됩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 ?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
?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 이지선 교수(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대학때 귀가 중 음주운전 차량..
불타는 차 속에서 건져 냄.
3도 화상,
30차례의 대수술 받은 그녀 그녀는
8 손가락 절단 성한 엄지손가락으로 써 내려간 글에서 감사를 외치고 있습니다.
“눈썹이 있었다는 것을 감사,
최고의 우산 이었다.
고통의 동굴이 아니라 감사를 배우게 하는 터널이었다.” 감사의 내용이 있고 글로써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의 히브리어는 ‘토다’(todah)입니다. ‘모세오경에서 ‘찬송하다’,
죄를 ‘자복하다’로 쓰이고,
왕국 시대이후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감사한다’로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때 사용되어집니다.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는 헬라어로 감사이죠.
좋은’(eu)과 ‘은혜’(charis)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내게 선을 베푸신 하나님의 좋은 은혜를 인정하는 기쁨의 표현입니다.
이 두 단어에서 감사는 내게 선을 베푸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의 이해와 경험은 우리 삶에 진정한 감사를 줍니다.
감사는 두 가지의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며,
내게 행하실 것을 소망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의로 여겨주신 우리 신앙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감사를 배우기 바랍니다. 창세기
11:31절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기사가 나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데라가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떠났지만 머뭇거림으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보며 시작했지만 가나안을 앞에 두고 마지막을 잘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후 그의 아들 아브람은 창
12:5에서 그는 우르를 떠나서 보여주시는 곳을 따라 떠납니다.
그는 그 후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의 대표자입니다.
23절은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24절에서 말하기를 “예수를 믿는 자 그리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은 단순한 가정의 아버지에서 열국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장차 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아버지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완벽한 존재이면 좋겠지만,
시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어릴 때에는 아버지 뒤에 숨으면 든든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숨겨주어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기까지 실패와 연약의 길을 믿음으로 걸어간 아브라함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감사 할 지를 됩니다.
덮여주시고 책임져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19절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는 완벽한 믿음의 소유자 였나요
? 그렇게 때문에 이렇게 표현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는 이삭을 낳기 까지 실패와 믿음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 하나님은 세 가지의 약속을 아브람에게 했습니다.
이것은 자손 아들,
땅, 복의 근원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창세기에 나와 있죠!
우리가 알듯이 아브람은
60세에 약속을 받고
100세 때 아들을 얻습니다.
본문의 표현은 아브라함이
100세라는 것과 사래의 태가 죽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불가능입니다.
만약 이것이 가능 한다면,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1100세 때까지 정말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떠했나요?
➊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살기 위해서입니다.
애급드림을 꿈꾸면서 떠났을 것입니다.
➋ 사래가 영원히 애굽 사람의 여인이 될 위기를 자초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문화에서 가정과 그의 사람들을(100명이상과 수백마리의 동물들)
위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고
... 그렇게 했노라고 주장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지만 분명한 아브라함의 ‘실수’이고 ‘죄’입니다.
분명 한 것은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도 같이 가셨다는 것입니다.
사래의 두 번의 위기에서도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구하시죠.
그리고 도리어 아브람은 많은 재산을 얻습니다.
➌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 가정의 위기를 자초합니다.
그리고 도무지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습니다.
누구를 통하여 아들을 낳는 것 상관없이 아브라함의 씨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 했 을 수 있습니다.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정으로 가정의 위기를 격지만 이때에도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급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자 믿음이 조금씩 더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연약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연약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신중하기 보가 행동이 먼저 나오는 사람,
일단 저질러 보고 생각하는 스타일입니다.
앞서 그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은 그가 이삭을 받을 때가 그 믿음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전의 여러 실수 죄는 보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과 그의 약속을 걸고 아브라함의 실수와 실패 약함 아픔을 다 덮으시고 도리어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고 행동으로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걸어온 길에서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 믿음이 조금씩 자란 것을 보시고 좋아하시고 계속하여 자신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시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23) 예)
미국 생활을
19년입니다. 여러분도 나름의 이민 생활 중입니다.
어디 순탄은 인생길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저마다 한두 가지씩의 고난의 훈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가의 주름가운데 아마의 긴 골에 이런 흔적이 다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것이 실패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스스로 자책하면서도 그때마다 하나님 붙들고 예배하고,
주일이면 어김없이 아이들 손잡고 예배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예배의 자리를 떠나 있을 때,
우리가 힘들고 눈물지을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았습니까?
고난과 제 멋의 인생길에서 한걸음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덮으시는 은혜가 없었다면 어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까?
뿐 만 아니라 분명 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실패한 인생은 없다” 란 말을 기억하십니까?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믿음은 은혜로 되는 것이지 행위나 됨됨이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흔들리면서도 신앙의 자란 것은 시시때때 찾아오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믿음이 그래도 자랐다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이것은 곧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를 돌보셨다는 증거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롭다고 하신 것에 감사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20-21절입니다.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신하지 않고 아브라함이
100세 되었을 때 전혀 불가능한 몸 상태이지만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확신했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으로 보시고
(이것도 성령께서 주신 것이지만)
그것을 의로 인정해 부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국 그가 하나님으로 의인임을 인정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감사입니다.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확신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시
23-25절을 봅시다.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자 보십시오 우리가 죄인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내 하나님의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죄인이 하나님 나라에 갈 확률은
0 %입니다. 아주 불가능입니다.
우리교회에 근우 형제가 고양이 한 마리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름을 ‘그린이’ 라고 지었습니다.
주로 밖에서 키웁니다.
그러나 제가 교회에 와서 문을 열어 놓으면 저 사무실 책상에 까지 올라오고,
내려놓으면 다시 올라옵니다.
자신의 몸과 머리를 제 머리에 비벼 됩니다.
제가 이 원고를 작성하는 동안에 사무실 밖 의자에 않아서 자고 있습니다.
얼마나 예쁜 짓을 하는지 아주 귀엽습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이 그린이가 사람이 될 확률은
?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될 확률도 없습니다.
그런데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는 하나님이 의롭게 여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부활하신 것이 우리(나)는 살리려 하신 것임을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고 천국 백성이 되어 진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니까? 23-25에서 우리는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이 하늘 보좌에서 땅에 내어줌이 되고 그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었고 그가 살아 나셨다고 증거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 이렇게 확신 있게 증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로마서 Romans 5:8,10) 하늘보좌 버리시고 낮은 구유로 찾아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지금도 그 소망 붙들고 한걸음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5: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의인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확신 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된 것을 아는 자들은 우리가 그 안에서 즐거워 하느니라” 우리는 이제 크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즐거워하고 자랑 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
의롭게, 천국 소망 을 가진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사 합시다.
주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
믿음의 항해를 하는 우리는 동역자입니다.
많은 파도와 절벽이 우리를 가로 막지만 우리는 더욱 힘을 내고 서로 격려하며,
말씀과 기도가운데서 더 견고한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시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절망의 밤에서 찾아오셔서 믿음을 주시고 견고한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을 놓지 말기를 바랍니다.
덮여주시고 책임져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에게 의롭다고 하신 것에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손을 은혜로 잡고 이끌어 가시는 큰 은혜를 바라보며 이 두 가지가 우리의 일상의 감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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