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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ree in Person | 김정호 | 2023-1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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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격에서는 셋(Three in Person)
논리적 사고를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모순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사람의 이성을 초월할 만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모순적이지는 않습니다.
I. 역설(Paradox): 삼위일체 교리는 역설적인 것이지 모순적이지는 않습니다. 비모순률( The law of non-contradiction) 는 모순된 두 가지가 같은 의미로 동시에 사실일 수 없다는 법칙입니다. 예를 들면 캄캄한 밤인데 동시에 환한 낮이다 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밤이기 때문에 밤이라고 말하는 것이 참입니다. 이것이 참이면 낮이라는 주장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격에서는 셋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이 하나님은 본질에서는 동등하며 동일합니다. 삼위 하나님은 신적은 모든 속성을 동일하게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삼위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위격에서는 셋이라는 가르침과 이 삼위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주장은 겉으로 볼 때, 곧 수학적으로 볼 때 모순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이 두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모순되게 보이지만 실체에서는 둘 다 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역설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paradox입니다. 이 단어는 para(---곁에)라는 접두사와 dokeo(보이다, 생각하다)라는 동사가 합성된 것입니다. 파라독스는 어떤 것을 곁에 두고 겉으로 볼 때는 모순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기 않은 것을 뜻합니다. 삼위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면 모순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세 분 하나님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삼위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이 되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삼위일체 가르침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본질에서는 하나(One in essence)이며 위격에서는 셋(Three in person)인 한 분(One Being)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믿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II. 본질과 위격(Essence and Person):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자를 구별 짓게 하는 것, 사자와 사과를 구별 짓게 하는 것, 하나님과 사과를 구별 짓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각 개체의 본질(헬-우시오스(ousios)-being, substance)입니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 자신 안에 존재하는 그 본체, 하나님이 다른 것들과 구별되게 하는 그 본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입니다. 위격(person)은 라틴어 person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별되는 개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초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려 한 사람은 터툴리안입니다. 이 단어를 통해서 터툴리안(Terrulian)은 역할, 위격(Personality)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어의 person이 뜻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III. 존재 양식과 존재(Subsistence and Existence): 삼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된 영어 단어는 subsistence입니다. 이 단어는 존재 양식(a personal mode of existence)을 뜻합니다. 하나님 본체에서 한 존재 양식은 차이점이 있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아닙니다. 삼위 하나님의 각 위격은 완전한 신성 아래 존재합니다. 본질의 범위 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단어는 영어로 subsistence입니다. 이것은 존재 양식을 뜻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다룰 때 또 다른 중요한 영어 단어는 existence(존재)입니다. 영어 단어 exist는 라틴어 ex(-에서, 으로부터)와 stere(서다-stand)의 합성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존재는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있는 순수한 존재를 뜻합니다. 이러한 존재는 영원하며 스스로 존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반면에 피조물의 존재는 being이 아니라 becoming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aseity). 신학자들은 삼위 하나님을 말할 때 three existences가 아니라 three subsistences로 표현합니다. 이는 영원한 한 본질 내에 삼위, 성부, 성자, 성령이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한데 이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 하나님에게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일하심에 있어서 각위가 독특하게 감당하는 역할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과 교제를 나누고 계십니다. 삼위 하나님의 관계에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됨(unity)을 이루면서 다양성(diversity)을 존중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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