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iritual Poverty | 김정호 | 2021-02-07 | |||
|
|||||
|
목장 예배 말씀 공부와 나눔-13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 5:1-12) 주제: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이 행복하기에 우리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서론: 어떤 청년이 아침에 새 차를 몰고 일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슴을 치는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는 불길한 예감과 우울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습니다. 그날 저녁에 편의점에서 산 복권 번호를 맞추다가 2백만 불이 당첨되었습니다. 기뻐 뛰며 부모님께 알리고 모두가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세금은 제하고 140만 가량을 받았습니다. 부모님 집 수리, 차 수리, 조카 차 대금을 완납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머지는 저축하고 필요한 곳에 쓰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복권 당첨되어서 필요한 곳에 돈을 쓰면 행복할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복권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의 말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갑자기 생긴 돈을 어떻게 관리할 줄 모르고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생각하며 흥청망청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 빈털터리가 됩니다. 돈은 필요한 것이지만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돈을 의지하며 마음 든든해 하는 것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는 세상적인 것입니다. 돈은 편리함을 살수는 있지만 행복을 살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돈을 최고 가치로 추구하며 행복을 꿈 꿉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란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관념을 뒤집는 파격적인 말씀에 놀랐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가난함이 행복하단 말인가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가난은 저주이고 불행이라 여기는 가치관에 도전하는 말씀 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가난함은 물질적인 가난함이 아닙니다. 성경은 가난함 자체가 복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재물에 대한 자세입니다. 가난한 자 중에는 교만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부자들 가운데도 그러한 자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가난하면서도 경건하고 부자이면서도 신실한 자들이 있습니다. 영성은 근본적으로 소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물이 영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물 여부에 따라 신앙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령의 가난함은 하나님 앞에선 영혼의 문제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거지가 생존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호의를 구하고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그와 같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함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심령의 소유자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심령이 가난한 복된 자는 어떤 자인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1. 배울 내용 첫째, 심령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로 번역된 헬라어 “프토코스”는 근근이 매달 살아가는 그러한 가난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없는 완전히 파산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거리에서 몸을 굽혀 구걸하는 거지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 마음 좋은 사람의 호의를 의지하며 하루 하루를 버텨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가진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자입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이 “프토코스”가 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심령”, “영혼”이 그렇게 느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영적 절대 빈곤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팔복의 가장 처음에 놓습니다. 이러한 영혼의 상태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절대 빈곤감에서 애통, 온유, 의에 대한 갈망, 긍휼, 청결한 마음, 화평케 함, 의를 위하여 핍박 받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아는 자는 그것을 채울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인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영적 빈곤, 질병, 파산을 인정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 심령을 치유하고 만족케 할 수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 병자는 아파서 의사를 구하고, 거지는 배고파 양식을 구하고, 목마른 사슴은 물을 찾듯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혼의 병, 굶주림, 갈증을 치유하고 채우실 예수님을 구합니다. 자기 죄로 인하여 영혼이 파산한 것을 느끼며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를 느끼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 것들로 부요한 자들은 이러한 영혼의 빈곤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들은 영혼의 공허함을 채우려 돈, 인기, 명예, 쾌락을 추구합니다. 새로운 물건을 사서 채우려 하지만 결코 채울 수 없습니다. 영혼의 공간은 우주처럼 넓어 오직 무한하신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에 대하여 갈망하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요 복된 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저주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영혼의 빈곤을 채우려 하는 자는 불행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어서 울며 하나님으로 가득해지길 갈망하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거지는 구걸하여 삽니다. 마음이 후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운입니다. 마음이 박한 사람들이 많아 구걸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나오는 자를 결코 물리치지 않습니다. 그분께 구원과 필요를 구하는 자에게 후하게 응답하시는 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여 구하는 자는 만족함을 얻는 행복한 자입니다. 둘째, 심령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심령은 그를 전심으로 구할 뿐만 아니라 그를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거지들이 마음 좋은 자의 호의를 의존 하듯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합니다. 그가 의지할 것은 자기 의가 아님을 압니다. 그는 그 안에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음을 압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음을 압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며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것을 알기에 그를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생활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살려는 것은 교만이며 죄의 본질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처럼 되어 스스로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려 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이 인본주의의 근본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바벨탑을 쌓고 이 땅에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가르칩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12).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찾으며 의지하게 됩니다. 거지는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살아 남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스스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심령이 스스로는 구원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그들을 의존하면 부담스러워 합니다. 자식들이 커서도 부모님에게 늘 손을 벌리면 부모님에겐 큰 부담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그를 의존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를 의존하는 자들을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의존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영혼의 구원과 매일의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을 채워 주십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서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우리는 주님의 채우심을 믿고 의존하며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감사하며 송축하게 됩니다. 셋째, 심령이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심령의 가난함은 겸손을 뜻합니다. 자신 안에 아무 것도 없으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닫는 자는 결코 교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벧전 5:5). 세상은 강한 자, 실력 있는 자, 설득력 있는 자, 인기 있는 자, 독립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여 찾고 의지하며 겸손한 자, 곧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관을 정면 도전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비굴하게 굴거나 자신감이 없어 숨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겸손은 하나님과 자신을 바르게 아는 데서 옵니다. 자신이 죄로 인하여 파산한 자인 것을 압니다. 하나님 앞에서 설 수도 없고 구원할 수도 없으며 의로움이 전혀 없는 존재인 것을 인정하는 데서 겸손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없으면서 있는 채 하고 모르면서 아는 채 하고 할 줄 모르면서 할 수 있는 척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정 받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참 모습을 대면한 자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 66:2).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그는 통회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은혜로 복 주십니다. 겸손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시고 그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5-8). 그는 하나님이셨지만 자기의 신적 권리와 특권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를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만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넷째, 심령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심령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여 찾고 겸손히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합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동의어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따르는 행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에 임할 천국을 일컬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지금 누리는 천국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리는 영역을 말합니다. 이것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는 곳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복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곳은 기쁨과 평강과 의로움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심령에는 영적인 질서가 세워집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양심이 자유하고 평강을 누립니다. 그의 심령은 하나님과 평화하고 이웃과도 화평하는 복을 누립니다. 그는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남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선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며 그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것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마귀의 속성을 따라 살면 무질서와 혼돈 밖에 없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마음이 높아서 예수님을 시기하며 배척하였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의롭다 생각했지만 실상은 교만과 탐욕의 노예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참된 의가 없었기에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다스림 아래 살면 그의 보호하심, 채우심, 만족케 하심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폭군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왕이십니다. 그 교회를 죽기까지 사랑한 영적인 남편이십니다. 그는 폭력으로 그 백성을 굴복시키지 않습니다. 그는 사랑과 은혜로 통치하십니다. 이러한 다스림을 받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기에 그는 행복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죄로 인하여 행복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온전한 다스림 아래 있는 천국에서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지금부터 영원히 하나님의 다스림이 주는 행복을 누리는 자입니다. 2. 나눔과 적용의 내용 a.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을 나누어 보세요. 한 주간 예수님과 어떤 사귐 가운데 살았는지 나누어 보세요. b. 여러분의 심령을 무엇이 장악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필요할 때만 찾는지 돌아보세요. 왜 하나님을 필요로 하며 왜 하나님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지 나누어 보세요. c.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적 자원, 인적 자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자신입니까? 죽을 때까지 먹고 살만한 차고 넘치는 돈이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돈과 상관없이 영혼이 곤고하고 힘들어 하나님을 찾은 적이 언제입니까? 여러분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여 누리신 복을 나누어 보세요. d.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싶은데 잘 안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려면 여러분의 심령이 어떠한 상태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여러분의 심령은 어떤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느끼십니까?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3. 기도할 내용 a.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목장 모임이 부흥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b.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고국의 평안과 바른 통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c. 교회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되고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d.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e. 교회의 영적, 재정적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f. 교회에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g. 직장을 구하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다음 분들입니다: Sheldon Landgrave. h. 성경번역 박혜리 선교사님, 터키의 소방은 선교사님(은석이 아버지),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예능이 아버지), 라오스의 이 영상선교사님(신혜 아버지)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