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회복 프로젝트(2)- 자족하는 마음 | 김혁 | 2025-09-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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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빌립보서4:10-20절 개역개정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기쁨 회복 프로젝트(2) Joy Recovery Project Philippians (4:11-20)
바울은 이제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편지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1장에서 착한 일을 시작 하신 하나님으로 우리의 교제가 시작되었고, (이것은 2차전도 여행에서 빌립보교회가 세워질 때를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들의 핍박으로 인한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였고, 2장에서는 자기중심의 시대에서 예수님의 섬김을 본 받아 바울자신이 섬긴 것처럼 성도들이 서로를 섬김으로 기쁨이 일어나기를 권면하고 3장은 교회 안에서 들어와 성도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은 ‘거짓된 믿음의 공격’에서 사라진 기쁨을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4장에서는 관계의 어려움에서도 기쁨으로 굳게 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록합니다. - 관용을 표현해서 알게 하고 - 예수님께 감사로 우리의 기도의 소원을 알려드리고, - 무엇에든지 7 가지의 것들을 생각하고 실천 할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실제 이것들을 자신이 하고 있으니 나를 본받을 것을 말합니다. )
9절,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The things you have learned and received and heard and seen in me, practice these things, and the God of peace will be with you.
이제는 그거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개인에 대한 것입니다. 개인의 간증입니다. 자신의 처한 환경은 실제로 가난했고, 사람들의 비난과 판단을 받아서 도무지 기뻐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것을 어떻게 이겨내고 어떻게 기뻐 할 수 있었는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족 하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Not that I speak from want,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in whatever circumstances I am. 자족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에 자족했을까요?
1. 바울은 지금까지 받은 것에 자족합니다. (10) 빌립보 교회는 감옥에 있는 바울의 상황을 듣고,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로나 그 방법을 한 동안 알지 못하다가 디도를 통하여 바울에게 그들이 모은 헌금을 전달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나는 참 기뻐한다”고 합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지금 다시 일어난 것을 보고,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나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But I rejoiced in the Lord greatly, that now at last you have revived your concern for me; indeed, you were concerned before, but you lacked opportunity 바울의 이런 표현은 당시 반대자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말 꼬리를 물어서 상대방의 본 마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에게는 바울이 돈을 원하고 물질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대자들은 바울이 은근히 이런 것을 요구하는 진실 된 사역자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전혀 악의적인 주장입니다. “다시 싹이 난다”는 표현을 사용 한 것은 아마도 당시 로마에 봄이 찾아왔고 사방에 싹들이 올라오고 있었든 것입니다. 이 표현은 당신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어려운 상황에서고 다시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분명한 것은 빌립보 성도들이 디도들 통해서 보내준 헌금은 액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순수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대하여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과 바울의 순수한 감동과 감사는 과연 예수님을 닮고,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의 귀한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전의 빌립보 성도들이 보낸 것과 받은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를 떠날 때와 데살로니가에 영적인 추억을 생각하게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보여준 사랑과 관심이었습니다.
15-16절입니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You yourselves also know, Philippians, that at the first preaching of the gospel, after I left Macedonia, no church shared with me in the matter of giving and receiving but you alone;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for even in Thessalonica you sent a gift more than once for my needs.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나는 선물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마게도냐를 떠날 때” →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고 핍박으로 급히 빌립보를 떠나면서 디모데를 남겨두고 데살로니가로 간 시점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있을 때는 ” → 바울은 AD 49–50년경, 바울이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갔을 때입니다.
15-16절에서, 이전에 마게도냐를 떠날 때와 행 17장에 기록을 보면 데살로니가 체류 시기가 아주 짧거나 몇 주~몇 달 정도였지만 짧은 기간에도 빌립보 교회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어 두 번이나 물질적 필요를 채웠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일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 복음의 확장과 바울의 생활에 튼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영적인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받는 것에 익숙하다 보면 감사하기보다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후원을 받다보면 사람이기에 그것이 수입의 일종이 되어서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그로 인한 기쁨이 넘쳤습니다. 바울은 당연함이 아니라 스스로 이들의 마음에 대하여 감사 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마음에 내적인 기쁨이 가득하게 채워지게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그린빌 은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각양의 모습으로 우리가 받은 사랑과 관심에 대하여 생각하고 영적인 추억들을 마음에 떠올리면서 스스로 만족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호의를 감사로 바꾸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만족합니다. 라는 감사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상황에 대한 감사,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2. 지금의 상황에 대한 자족(11)
4:11절에“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Not that I speak from want라고 합니다. 이 말은 너무 궁핍해서 너의 헌금이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실 바울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쓸 것을 공급 받았습니다. 바울은 결코 쓸 것이 남아 돌 만큼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상황에 스스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 하고 그날그날 주시는 것으로 감사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말은 입증 됩니다.
1. 빌립보 감옥에서 모든 불편한 상황에서도 감사 합니다. 2. 여러 번 옥에서 갇히고 채찍과, 돌에 맞기도, 배가 난파, 배고픔 목마름 등에서도 그는 그 상황을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을 잘 인내하면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 했습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Corin 11:23-27) I more so; in far more labors, in far more imprisonments, beaten times without number, often in danger of death. Five times I received from the Jews thirty-nine lashes. Three times I was beaten with rods, once I was stoned, three times I was shipwrecked, a night and a day I have spent in the deep. I have been on frequent journeys, in dangers from rivers, dangers from robbers, dangers from my countrymen, dangers from the Gentiles, dangers in the city, dangers in the wilderness, dangers on the sea, dangers among false brethren; I have been in labor and hardship, through many sleepless nights, in hunger and thirst, often without food, in cold and exposure.
3, 그는 고린도에 있을 때 천막을 만들어서 의식주를 해결 했습니다. 바울이 어려운 성도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사람들을 생각한 것입니다. 닥쳐진 상황에 대한 자족은 곧 하나님이 모든 필요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자 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것은 현재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일용할 양식과 앞으로 삶에 필요한 것들 외의 것들을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고후 8:1-2절,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Now, brethren, we wish to make known to you the grace of God which has been given in the churches of Macedonia, that in a great ordeal of affliction their abundance of joy and their deep poverty overflowed in the wealth of their liberality. 마게도냐 교회들 역시 가난했지만 그 극한 가난이 넘치는 충성한 헌금을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풍성하고 가진 것 많아야 많은 헌금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관용 감사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을 주고 도리어 기쁨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풍족은 많은 헌금의 액수가 아닙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I know how to get along with humble means, and I also know how to live in prosperity; in any and every circumstance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filled and going hungry, both of having abundance and suffering need.
우리도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늘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만족을 얻기 위해서 세상이 주는 비법 비방들만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술 약물 쾌락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바울이 당한 ‘비천’과 ‘풍족’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 ‘궁핍’, 그 어떤 경우 들을 지금 경험하거나 곧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스스로 받아들이며 자족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필요이십니다.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발견 합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고 무기력한 자에게 활기를 주시고 병든 자를 낫게 하시고 눈먼 자를 인도하십니다.”
3. 힘의 근원에 대한 확신은 자족하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13) 바울은 나는 이미 나의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비천/ 풍부 배부름/배고픔 풍부/궁핍 어떠한 극과 극의 상황에도 나는 적응 하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예수님이 주셨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스스로 자족하는 능력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말씀이 만사형통을 가르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고후 12:9-10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And He has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power is perfected in weakness " Most gladly, therefore, I will rather boast about my weaknesses, so that the power of Christ may dwell in me. Therefore I am well content with weaknesses, with insults, with distresses, with persecutions, with difficulties, for Christ's sake;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흘러야 하나님의 뜻을 수행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에게 가난이나 아픔의 상황이 주어질 때 우리는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지금까지 내가 얻은 것과 가진 것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지금의 상황도 나만! 왜? 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우리 가정을 위해서! 주신것이구나! 라고 스스로 만족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렇게 고백 할 수 있습니다.
“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 “I can do all things through Him who strengthens me.”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 삶의 기본 원리입니다. 만족한 삶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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