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과연 살아나셨습니다 (4/20/25) | 김 혁 | 2025-04-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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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4:25-33절 개역개정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예수님이 과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눅 24:30-35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And they got up that very hour and returned to Jerusalem, and found gathered
together the eleven and those who were with them, saying, "The Lord has
really risen and has appeared to Simon." They began to relate their
experiences on the road and how He was recognized by them in the breaking of
the bread. (33-35)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The
Lord has really risen and has appeared to Simon.”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 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죽으시고 안식일이 지난 후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 가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려고 무덤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이들을 만나십니다.
그러나 이들의 증거에도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외 예수님은 따랐든 사람들은 제 길로 흩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들 중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절망과 슬픔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날,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서 슬픈 얼굴의 빛이,
밝고 화사하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얼굴빛이 변한 사건을 재조명 해 봅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의 만난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유익이 오늘날에도 일어날까요?
요한복음
20:17 ( 예수께서 박달아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Jesus said to her, "Stop clinging to Me, for I have not yet ascended to
the Father; but go to My brethren and say to them, 'I ascend to My Father and
your Father, and My God and your God.'"
고전 15장 5-8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and that He appeared to Cephas, then to the twelve. After that He appeared to more than five hundred brethren at
one time, most of whom remain until now, but some have fallen asleep; then He
appeared to James, then to all the apostles; and last of all, as to one
untimely born, He appeared to me also.
슬픔으로 가진 제자들을 심방 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사람들을 만나러 가셨다는 것입니다.
심방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 일 뿐 아니라 그 분은 과연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메시아 이십니다.
이런 분이 하늘로 바로 가시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셨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약
10Km 떨어진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글로버와 이름 모르는 한 사람)와 동행 하시면서 이들과의 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고 이들의 대화의 주제는 예루살렘에 되어진 모든 일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17절에는 “이들은 슬픈 빚을 띄고 있었다”And
they stood still, looking sad.고 합니다.
예수님은 슬픈 빛을 띠고 걸어가는 두 제자에게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건지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도리어 예루살렘에 살면서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는가?
반문합니다. 이들의 대답을 한번 보십시오.
이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알고 있는지도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가 선지자인데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다라고 믿었는데 그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대했든 이스라엘의 속량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어떤 여자들이 예수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보았다 하고,
제자들은 이를 확인하러 무덤에 갔다가 시신을 보지 못했지만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하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실제로 부활하신 그를 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교적 자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예루살렘에 남아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들의 선택은 엠마오로 가는 것입니다.
사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슬픈 이유는,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날 수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가올 핍박에 대한 두려움과 예수님의 부재로 인하여 허탈해 했습니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면서요?
이것이 선인들의 지혜하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고쳐서 다시 만나서 사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하여 져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기보다 당장 눈 앞의 당한 현실이 그들을 압도하고,
그 동안 예수님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돌아서서 반대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두 제자는 하나님을 떠나서 멀어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심방하십니다. 고린도 전서에는 동시에
500여 형제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보여 주셨죠.
이들의 이름은 없지만,
그나마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이름이 ‘글로버’라는 것을 감사 한 일입니다.
연약하고 무너질 것 같고 금이 가 있는 믿음을 수리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로 하시고 격려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자신의 안위나,
당장 성부 하나님의 곁으로 가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자들입니다.
사람입니다. 바로 ‘여러분’이고 바로 ‘나’,
‘자신’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부활절은 그저 행복하고 선물을 준비하여 만족하고 즐기는 날입니다.
예수 부활은 교회에만 있는 그런 기념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기로는 부활하신 날은 예수님이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심방하시고 격려하시고 다시 믿음을 주시는 날인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길 위에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예수님과 멀어지고 있나요?
아니면 가까워 지고 있습니까?
어디에 있든지 성령 하나님의 심방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 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심방을 받으시고,
다시금 이 땅에서의 소망보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나의 믿음을 굳건히 하시기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이야기하고 먹습니다.
심방해 주시는 예수님이 그냥 나 살아 났어?
정도가 아닙니다.
함께 엠마오로 내려가시고 있습니다.
두 제자는 현재 도피중입니다.
일이 잠잠 해 지고 예수에 대한 소문이 없어 질 때까지 숨어 있을 예정입니다.
핫한 뜨거운 감자 같은 곳에서 예수님을 죽였든 무리들과 유대인들의 눈에서 잠시 잊히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절망의 길’이라고 부르고,
막막하여 ‘막다른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또 다른 사람들도 만나야 하기에 바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는 떠나지 않고 물어보시고,
들어 주시고 말씀을 풀어서 설명하시고,
그리고 함께 주무시기 위해서 들러 시고 같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십니다.
예)
전도 하는데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2시간 정도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더니,
자기가 예수를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준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도 숨기고 싶은 것들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죠.
두 제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절망의 마음의 소리를 이 낮선 남자에게 다 말합니다.
이들의대화를 다 들으시고 예수님은 이 어리석은 자들아
! 라고 하시면서 예수는 고난을 받아야 영광에 들어 갈 수 있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호되게 혼내 실수 있는데 그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화가 나거나 마음이 복잡하면 마리 조리 있게 나오던가요?
에수님은 다 설명해 주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How
foolish you are, and how slow of heart to believe all that the prophets have
spoken! Did not the Christ have to suffer these things and then enter his
glory? And beginning with Moses and all the Prophets, he explained to them what
was said in all the Scriptures concerning himself.(25-27)
예수님은 두 제자들에게 내가 곧 예수다!
라고 보여주시는데 이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내려가는 제자들은 세상의 염려과 걱정,
불안 두려움으로 눈앞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but they were kept from recognizing him.(24:16)
부활을 모르면 십자가의 삶은 가장 헛되며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알면,
믿으면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길이 됩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But Christ has indeed been raised from the dead, the first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John 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예수님은 비록 절망과 슬픔을 가지고 있지만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죽은 나사로도 살리는 것을 본 자들이 한 결같이 풀이 죽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자신이 다시 살아 난 것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을 찾아가 부활의 소식을 알립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내가 고난을 받고 다시 살아난다고 했고,
이들과 저녁을 드시고 이들의 눈을 밝게 하십니다.
이때 비로소 두 제자는 이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그래 이분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마음이 뜨거웠었지!!!.
바로 이분이 예수님이신데..
우리가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성경을 풀어 주실 때 감동 된 것을 서로 말하며 절망이 소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의 모습과 같이 변하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떡을 떼시고 보이십니다.
우리가 때론 제자들과 비슷한 절망과 슬픔의 그리고 믿지 못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다시 일으키고 바닥에서 하늘의 영광을 경험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들으시고 답변하시고 시간을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죽음과 절망의 렌즈를 부활의 렌즈로 바꾸시고 다시금 소망을 주시고 살 힘으로 주십니다.
그리고 깨닫게 하시고 다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신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런 기적을 경험 합니다.
이제 다시 올라가는 용기를 얻습니다.
이들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서 방향을 바꾸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예수의 사람들을 잡으려고 하고 핍박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방향이 바뀝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간증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지금 내려가는 중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다시금 그분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고,
그 자리로 나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올라 갈 수 있습니다. 환경이 변하지는 않지만 마음 중심에 변화가 생깁니다.
과연
.....
이들은 주께서 과연 살아 나셨고 시몬에게 보이셨다고 증거합니다.
이때의 분위기는 ‘과연’입니다.
“그래 그분이 말씀하셨어!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는가?
그가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그의 아들이시고 메시아이시다.” 이 두 사람도 길에서 있었던 일과 예수께서 떡을 때어 주심으로 자신을 알려 주신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죽음의 렌즈로 보니 이들은 스스로가 참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부활의 렌즈로 바꾸어 쓰게 하셔서 다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로 바꾸십니다.
실패의 현실은 희망으로 보이게 합니다.
부활은 우리를 절망에 두지 않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그 가운데로 오셔서 이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십자가 사형
3일 이후,
가장 바쁘신 분은 누구입니까?
과연 부활 하신 예수님이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 이후에 낙심되어 있는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만나셔서 자신이 살아났음을 알리고 이들은 격려 하십니다.
그리고 시간을 보내시면서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고전에서는 예수님은
12제자 뿐 만아니라
500여명의 형제들에게 일시에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평안을 주십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때론 낙심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자신의 자녀들을 격려하시고 도우시고 일으키십니다.
절망과 아픔과 슬픔이 감동으로 변하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리의 힘이고 능력입니다.
그분과의 교제가 다시 일어서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입니다.
죽음 이후의 부활도 은혜이지만,
매 순간 마다 성령하나님으로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것이 곧 부활의 능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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